온도조절계 기록계 타이머 등 각종 계측기를 만드는 한영넉스의 한상민 사장(36)은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람은 기름때를 만져가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그땐 왜 기름때를 묻히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들기 일쑤였다.

아버지 한영수 회장(64)은 아들에 대해 "어려선 기름때가 싫다며 대들곤 했는데…. 이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아들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들한테 가업을 잇겠다는 약속을 받기까지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며 애간장을 무척 태웠다"며 "이젠 한시름 놨다"고 귀띔했다.

부자의 배움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한 사장은 한국외국어대(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린(Lynn)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고 한양대에서 박사(생산관리 전공)과정을 수료했다. 한 회장도 아들에 뒤질세라 주경야독했다. 부자의 '공부 대결'은 아버지의 판정승.서울산업대를 졸업한 한 회장이 2004년 동국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아들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

◆초기부터 국산화로 기술력 인정

직장생활 1년 만인 1972년 자본금 3만원으로 서울 문래동의 60㎡ 남짓한 임대사무실에서 직원 2명과 창업한 게 한영넉스의 출발이다. 한 회장은 직장에서 외산 계측기를 수리하며 터득한 기술로 창업 1년 만에 계측기를 국산화했다. 한 회장은 "공장을 찾아다니며 발품팔이를 했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며 "1년쯤 지나자 우리제품을 찾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매출도 월 300만원대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 여파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거래기업들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이때 한 회장은 "한 품목만 만들어서는 위기를 넘길 수 없다"며 품목 수를 늘렸다. 압출기 사출기 등 자동화기기의 주변부품인 스위치 센서 등을 3~4년간 개발했다. 50개(현재 4000여개)까지 품목 수를 늘린 한 회장은 1980년대 들어 공장 옆건물을 잇따라 사들이면서 공장 규모를 확대했다.

또 독일 일본 미국 등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며 해외시장 개척도 본격화했다. 1987년 미국에 1만달러로 시작한 수출은 현재 스페인 인도 멕시코 중국 등 30여개국에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한다.

◆해외공장 짓고 글로벌 기업 도약

외환위기 때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게 한 회장의 얘기다. 매출은 줄었지만 수출 증가로 인한 환차익으로 수익 규모가 컸다는 것.이때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도입하고 사무자동화교육을 실시했다. 한 회장은 "한 명의 직원도 줄이지 않고 6개월 동안 한나절 근무를 하면서 직원교육과 사무자동화를 했는데 지금 큰 자산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회장은 글로벌 시장 도전을 단순히 제품 수출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현지 공장 설립을 본격화하면서 현지화를 추진해 나갔다. 2003년 중국 상하이에 300만달러를 투자, 부지 1만3200㎡에 건평 6600㎡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이듬해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500만달러를 들여 부지 1만6500㎡에 건평 6600㎡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한 회장은 "초기 몇 년간은 제대로 된 품질이 안 나와 제품의 절반 이상을 폐기해야 했지만 이젠 해외 공장에서 근무하는 400여명의 근로자들이 모두 숙련공이 됐다"고 소개했다.

◆아버지 닮아 현장을 누비는 아들

한 사장은 대학생 때부터 방학기간 중 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입출고 배송 자재구매 생산 등을 몸으로 익혔다. 직접 배송에 나섰다가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내기도 하고, 납땜을 제대로 못해 작업반장한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국내 컨설팅 회사에서 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2007년 기획이사로 입사한 한 사장은 컨설팅 경력을 토대로 공장혁신에 나섰다. 한 사장은 "기존에 해오던 대로 하면 되지 굳이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느냐는 아버지를 한 달가량 설득해 경영쇄신에 나섰다"고 말했다. 몇 년째 적자를 내고 있는 중국 공장의 혁신이 첫 과제였다. 한 사장은 "중국 공장은 현지 직원들이 태업하고 있는 게 적자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한 사장은 2009년 6월부터 두 달 동안 현지에 머물면서 문제가 있던 직원들을 내보내고 설비도입과 생산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적자공장을 지난해 두 배 이상 성장시키며 흑자로 돌려놨다. 한 회장은 아들이 중국 공장에서 보여준 경영수완을 인정, 지난해 10월 사장을 맡아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한 회장은 "아들이 작년 하반기 중국 공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중국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설계구조에 맞는 현지화 제품을 개발, 작년 말부터 현지 판매를 시작하는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며 "가업승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아들의 경영전략에 힘을 실어 주는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인천=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