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을 지나치게 의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IMF 산하 기관인 독립평가국(IEO)은 9일 2004년부터 2007년까지 IMF 활동을 감사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IMF 이코노미스트들이 '설마 선진국이 그렇게 되겠느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를 무시하는 잘못을 범한 것으로 나타났다.

IEO는 "주요 지분국인 미국 등 선진국의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IMF가 '자기 검열'을 통해 보고서를 누그러뜨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IMF 이코노미스트들이 대주주인 선진국들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얘기다. 특히 "일부 직원들은 미국 금융시장을 대변하는 옹호자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환율 문제에선 미국의 압력을 받다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반발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IEO는 IMF의 △낡은 경제 분석 틀 △전문 인력 부족 △정보 접근성 제한 등도 사전에 위기를 탐지하지 못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IMF의 분석은 전통적인 거시경제적 접근 방식에 치중했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의 부실을 제대로 잡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금융시장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정보 접근성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일부 선진국들의 반발까지 겹치면서 금융 안정 문제를 분석 대상에 제대로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금융시스템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