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식량 확보 전쟁이 시작됐다. 주식(主食) 곡물을 비롯해 각종 식료품값이 폭등하자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출 제한과 비축물량 확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만나 식량가격 안정을 논의하고 G20 정상회의에서도 식량안보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로 하는 등 국제사회의 공조 움직임도 나타나지만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택할 경우 '환율전쟁'과 유사한 '식량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9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쌀 비축량을 현재 150만t에서 200만t으로 늘리는 계획을 승인했다. 방글라데시도 이날 찐쌀 20만t을 태국에서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태국 베트남 등과 함께 주요 쌀 생산국이다. 쌀값이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글로벌 곡물가격 급등에 긴장한 국가들이 미리 '사재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이런 가수요로 인해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도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달에도 예상보다 5배나 많은 쌀을 사들여 시장을 놀라게 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밀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뭄 지역 8개 성에 51억위안(857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하는 등 곡물 생산 증가와 가격 안정을 위한 10대 대책을 내놨다. 쌀 수매가격도 21.9% 올리기로 했다. 중국은 또 가뭄 방지 등 물관리를 위해 4조위안(680조원)을 풀 예정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중국의 밀 생산 감소에 따른 세계 곡물가격 급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필리핀 소재 국제쌀연구센터의 로버트 제이글러 이사도 "중국이 내수를 위해 국제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밀 구매에 나설 경우 세계 곡물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밀 가격은 이날 3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 면화 설탕 등을 수출해온 러시아 인도 등의 수출 제한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글로벌 공조 움직임도 보인다. 다치안 치올로스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워싱턴에서 톰 빌삭 미국 농무장관과 만나 식품값 안정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G20은 오는 18일 파리에서 재무장관 회담을 열어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의 국제 감시체제 창설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G20은 또 올해 의장국인 프랑스의 제의로 6월 파리에서 G20 첫 농업장관 회담도 개최한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