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즉각 사임하라는 국내외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이집트 군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무바라크 정권과 시위대 사이에서 중립적인 역할을 해왔던 군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향후 이집트 정국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일각에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라바크를 축출시킬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듯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국영TV를 통해 연설하기 몇 시간 전 이집트군은 모하메드 탄타위 국방장관이 주재하고 20여명의 군 장성이 참석한 최고 지휘관 회의를 열였다.무바라크가 권력을 이양키로 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군부는 성명을 통해 “이집트군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가 수호에 돌입할 것” 이라며 “시위대의 모든 요구는 충족될 것”이라고 밝혔다.또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지지한다” 며 “이집트의 국익과 시민의 열망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하산 알 로에이니 카이로 방어 사령관은 이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직접 나와 “오늘 모든 요구가 총족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무바라크가 이날 퇴진을 공식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무바라크 정권을 유지해 온 핵심 축인 군부가 결국 무바라크에 등을 돌렸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무바라크가 즉각 퇴진을 거부함에 따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카이로 소재 알 아흐람 정치전략센터의 나빌 아브델 파타 연구원은 “군 통수권자인 무바라크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군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군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군부 동참은 OK,군사정권은 NO

야당 지도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무바라크 연설 직후 “이집트 사회는 곧 폭발할 것” 이라며 “군부가 당장 나서서 이집트를 구해야 한다”고 군부에 촉구했다.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해 왔던 시위대도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당장 물러나라(get out)’라는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또 “군은 현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군의 시위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AFP통신은 이날 새벽 시간에도 수천명의 군중들이 국영TV 건물과 카이로 대통령궁을 향해 행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시위대가 군부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지만 군사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선 대체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최대 야권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이날 상황에 대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도 ‘군부가 아닌 민간인을’이라는 구호를 연호해 군사정권 등장에 대한 경계감을 피력했다.

◆퇴진 종용했던 미국은 당혹

무바라크에 사실상 퇴진을 종용했던 미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바라크의 연설 직후 백악관 참모회의를 긴급 소집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미시간주 연설에서 “세계가 이집트에서 펼쳐지는 역사,변화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무바라크가 이날 퇴진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리언 파네타 국장은 이날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오늘밤 안으로 사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힌 바 있다.이에 따라 정보당국의 잘못된 판단과 무능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미 행정부와 의회에서 쏟아지고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집트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구체적인 변화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그는 “이집트 정부가 국민에게 정권 이양을 약속했지만 이 같은 변화가 얼마나 즉각적이고 의미있게 이뤄질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