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29)은 아쉽다고 했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최고 시청률 35%를 기록하는 등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더 누리지 못하고 다음 달 7일 군입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이렇게 인기가 많을 때 군대를 가는 것이 아쉽지는 않아요. 이제 연기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데 그걸 잠시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죠.내 안에서 무언가 더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더구나 그가 주연한 영화 '만추'와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모두 지난 10일 열린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팬들로서도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던 '만추'는 뒤늦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색,계'의 탕웨이가 출연하는 등 촬영 전부터 화제를 뿌렸지만 그동안 개봉관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현빈의 인기와 베를린영화제 초청 등 호재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만추'는 7년째 수감 중인 중국계 여인 애나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허락된 72시간의 짧은 휴가 동안 우연히 만난 한국 남성 훈과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렸다. 원작은 1966년에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의 동명 영화로,배경을 미국 시애틀로 옮겼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제가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많아서 출연하기로 결정을 했어요. 하지만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특히 상대 역과 강렬한 신체 접촉을 해야 하는 모텔 장면과 여주인공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중국 식당 장면에서는 동작 하나,대사 하나를 만들어가는 등 어렵게 작업했어요. "

그는 이 영화의 원작뿐만 아니라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 등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을 보거나 참고하지 않았다. 전작에 압도돼 자신만의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할까 경계했기 때문이다.

"감독님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게다가 영어로 제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현지에서 촬영 전부터 영어 선생님 2명과 매일 공부했죠.영어 대사를 한국어로 바꿔 연기하고 그 감정을 실어 다시 영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쳤죠."

낯선 현장에서 특별한 리허설도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12시간밖에 촬영할 수 없어 현장에서 리허설을 충분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밤 연극 극장을 빌려 리허설을 하듯 대본 연습을 했다.

이번 영화를 포함해 그의 필모그래피는 의외로 다채롭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노 개런티로 출연한 저예산 영화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등 대중적인 작품과 작품성이 강한 작품을 넘나들며 출연했다.

"항상 시나리오가 작품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이에요. 감독과 배우들이 훌륭해도 시나리오가 부족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출연 영화들의 균형을 위해 예술성이 더 있는 작품을 고르지는 않죠.사실 영화나 드라마나 많은 돈이 들어 가기 때문에 모두 상업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해병대 입대에 대해서는 "20대를 대부분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며 보냈기 때문에 앞으로 2년간은 저에게 집중해 인간 김태평(현빈의 본명)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