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곡물기업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은 식량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자국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를 불려가고 있다.

세계 최대 곡물업체인 미국의 카길을 비롯해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프랑스의 루이드레퓌스(LDC),아르헨티나의 벙기,스위스의 앙드레가 5대 메이저 곡물업체로 꼽힌다. 이들은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과 인사교류 및 로비 등으로 전 세계 농업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부문 협상은 곡물 메이저들의 손바닥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업체가 매년 10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카길이다. 미국 농업부문의 통상 정책엔 언제나 카길의 입김이 작용한다. 카길 출신 임원들이 미 정부 요직을 차지해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 카길 부회장이었던 대니얼 암스테드는 미국을 대표해 협상을 주도했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협상에서도 카길이 제시한 초안이 그대로 정부안에 반영됐다. 2006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워런 스탤리 전 카길 최고경영자(CEO)를 대통령 직속 수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최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식량가격 규제'를 설정하자는 프랑스의 의견에 반대한 것도 자국 곡물 기업의 이익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유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LDC와 스위스의 앙드레는 WTO 협상 때마다 각국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 기금을 놓고 프랑스가 다른 국가들과 갈등을 빚는 것도 자국 곡물 기업인 LDC 때문이라는 것이다.

5개 메이저들의 점유율은 전 세계 곡물 시장의 80%가 넘는다. 이들은 전 세계 곡물 유통망을 장악해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을 봉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또 사재기를 통해 싼 값에 곡물을 대거 사들인 후 비싼 값에 되파는 식으로 가격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기준으로 옥수수,대두,소맥 등 3대 주요 수입 곡물의 57%를 5대 메이저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식량대국인 중국도 곡물 메이저에 긴장하긴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이들 업체가 중국에 처음으로 진출해 곡물을 사재기하면서 곳곳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량그룹 등 곡물기업 육성에 발빠르게 나섰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곡물기업 육성에 앞장섰다. 한국의 농협중앙회 격인 일본의 젠노는 1979년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1988년에는 미국 곡물 메이저인 CGB사를 인수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출발이 늦은 상황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aT(농수산물유통공사)가 주축이 돼 미국에 국제곡물회사를 설립하고,해외 시장에 진출해 곡물 메이저들에 견줄 수 있도록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