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땅이 얼어 덜하다. 해빙기가 지나고 아지랑이가 피는 봄이 되면 토양,하천,지하수 오염이 얼마나 심해질지 모른다. 전국 4200여곳이 2차 환경재앙에 노출돼 있다. "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11일 '봄의 재앙'을 걱정했다. 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자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구제역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워낙 다급하게 하천 옆 등에 오염 가축을 묻었던 탓에 지하수를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 구제역 확산 자체는 수그러들고 있는 추세지만 후유증은 눈덩이처럼 커질 조짐이다.


◆한강 상수원 오염 우려

정부가 지난 10일 한강 상류지역의 가축 매몰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32곳 가운데 절반인 16곳에 대한 정비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댐 상류지역이 2차 피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정은해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은 "조사대상 총 99곳 중 첫날 32곳을 조사한 결과 16곳이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중 11곳은 하천과 가까워 침출수로 인한 오염이 우려된다"고 11일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양평의 한 매몰지는 하천과의 거리가 5m밖에 안될 정도로 가까웠다. 다른 매몰지도 5~30m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 과장은 "하천과 거리가 가까운 곳은 침출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시멘트로 막는 차수벽을 세울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의 1곳은 사면이 붕괴될 우려가 있으며 4곳은 빗물이 모이는 지역이어서 배수시설 설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매몰지에 대한 환경오염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다음 달 말까지 침출수 방지를 위한 옹벽과 차수벽 설치를 완료하기로 했다.

◆지하수도 위험하다

매몰지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지하수의 안전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환경부가 2004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발생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오염 가축 매몰지 23곳을 대상으로 환경오염 여부를 조사한 결과 8곳(35%)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지하수,토양 오염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매몰지 4200여곳 중 30%인 1500곳 정도가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부는 부패한 동물 사체에서 나온 침출수엔 대장균,장 바이러스 등 미생물과 질산성 질소,암모니아성 질소 등 유독화학물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구제역이 발병한 경기 포천 지역의 매몰지 주변 지하수 47곳 중 14곳(29.8%)에서 수질 기준을 초과했다.

각 지자체는 매몰지에서 반경 300m 이내 지하수를 대상으로 수질 검사를 벌이고 있다. 이 중 최근 강화군의 구제역 발생 농장 3㎞ 이내에 있는 마을상수도 51곳의 수질을 조사한 결과 31곳(50.8%)이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시도 22만여마리를 묻은 매몰지 69곳을 대상으로 침출수 유출조사에 들어갔다.

◆매뉴얼 안지키고 묻기에 급급했다

전문가들은 가축 330만마리를 묻기에만 급급해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매몰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구제역 매뉴얼(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매몰요령은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아니하고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에 매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매몰 방법도 '바닥에 비닐을 깔고 흙을 1m 덮은 뒤 생석회를 뿌리고 그 위에 사체를 2m,흙을 3.5m 순으로 쌓을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 구제역 발생농장에서는 분뇨를 비닐로 덮은 채 발효시키거나 땅에 묻어야 하고 사료도 오염됐기 때문에 소각하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제한된 인력으로 엄청난 수의 가축을 시급하게 매몰하다 보니 매뉴얼을 따르지 못한 곳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언 땅이 녹기 전에 전수조사를 통해 부실 매몰지를 찾아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매몰지에 대한 조사를 시 · 도 부시장이 직접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최진석/서욱진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