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기준금리(정책금리)를 동결한 것은 속도 조절 차원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연 2.75%에 불과한 기준금리를 높여가야 하지만 지나치게 빨리 인상할 경우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가계 이자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4%를 웃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한은이 내달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왜 동결했나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가 좋고 물가가 뛰고 있는 만큼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 및 금융회사 대표 애널리스트 20명으로 구성된 한경이코노미스트클럽은 이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63%로 관측했다.

한경이코노미스트클럽 회원인 박기홍 외환은행 연구위원은 "한은이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두 달 연속 인상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이날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이달에 올렸을 것"이라며 두 달 연속 인상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11월 인상한 뒤 12월엔 동결했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환율 하락과 가계부채 문제 등 일부 여건이 만만치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이는 경상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가계부채는 900조원에 이르러 한은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 높이고 금융회사들이 이를 반영해 대출금리를 같은 폭으로 인상하면 연간 추가 이자 부담액이 9조원에 달하게 된다.

일각에선 한은이 금리정책에 있어 여전히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2월 경제동향'에서 물가 상승의 원인을 국제 유가 등 공급 측면으로 진단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차단'이란 표현 자체도 뺀 만큼 한은도 여기에 박자를 맞춰 금리를 동결했다는 지적이다.

◆언제 다시 올릴까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 방향 의결문에서 '물가 안정기조가 확고히 유지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한다'는 대목을 유지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로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3±1%)의 상단(4%)을 벗어난 만큼 기준금리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 한경이코노미스트클럽 회원의 90%도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응과 더불어 한은의 금리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포인트는 시기다. 현재 시장에선 3월 인상론이 대세다. 공동락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금통위가 두 달 연속 인상이란 파격은 피했지만 긴축 기조는 유지했기 때문에 3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염상훈 SK증권 연구위원 역시 "기대인플레이션 심리 확산 차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3월에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며 올 연말에는 연 3.75%까지 높일 것"으로 관측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은이 금리 정상화 기조를 밝히긴 했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늦어 급등하는 물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이코노미스트클럽 회원인 권영선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함에 따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누르는 데 실패했고 정책 전달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금융회사의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면 한국의 수출이 늘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게 될 것"이라며 "경기가 좋을 때 기준금리를 빨리 정상화시키지 않고 있어 향후 경기가 꺾일 때 기준금리를 올리는 엇박자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