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물러 나기로 결정했다"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발표에 이집트 전역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전날 무바라크가 대국민 연설에서 세간의 예측을 뒤엎고 대통령직 사퇴를 거부하면서 혼돈으로 치솟던 이집트 정국은 만하룻만에 30년 철권 통치의 종식으로 반전됐다.분노한 100만여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 의회 국영TV방송국으로 진출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면서 무라바크가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무바라크는 헬기편으로 카이로를 탈출,홍해휴양지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끝내 무너진 무바라크

분노로 시작해 환호로 끝난 긴박한 이틀간이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0일 국영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외부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위대의 즉각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권력을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점진적으로 이양하겠다”며 “대선이 치러지는 9월까지 평화적인 권력이양 조치를 밟아나가겠다”고 못 박았다. 무바라크는 또 발효된 지 30년된 비상계엄령도 국가의 안보상황이 안정되면 해제하겠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폐지 시점을 언급하진 않았다.

무바라크가 즉각 사임을 발표할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 달리 무바라크가 정면 대결을 선택하자 시위대는 분노했다.시위대는 줄곧 무바라크의 조건 없는 퇴진과 즉각적인 계엄 폐지 등을 요구해왔지만 무바라크는 이를 전면 거부한 것이다.뉴욕타임스는 “무바라크의 사퇴 거부에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가 분노했다”며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시위대는 잇따라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독일 한델스블라트도 “사퇴 거부는 국민감정만 자극한 무바라크의 악수”라고 분석했다.

이집트 정국이 격랑을 타기 시작한 것은 11일 오후부터였다.카이로 알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한 100만여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대통령궁 의회 국영TV방송국 등 주요 거점으로 잇따라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당초 유혈충돌도 우려됐지만 일부 군인들은 시위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등 대세가 급격히 시위대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국영TV 앵커도 시위대에게 “민주화 시기 초기에 (보도에) 실수가 많았다”고 사과하는 등 무바라크의 정국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결국 현지시간 오후 6시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라바크 대통령의 퇴진과 군에 권력을 물려준다는 짧은 발표로 ‘항복 선언’을 했다.

한편 알아라비아TV는 무바라크가 가족과 함께 헬기편으로 카이로를 탈출,홍해 주변 휴양지인 샤름 엘셰이크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군부의 절묘한 줄타기

이집트 군부는 11일 오전 최고지휘관회의를 가진 뒤 가진 성명을 통해 “현재의 혼란스런 상황이 종료되는 대로 시위대 요구를 받아들여 30년간 시행돼 온 긴급조치법을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군부가 18일간 유지해온 중립 태도를 버리고 사실상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취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군부가 무바라크를 지지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줄타기 행보를 보이던 군부도 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거스르지는 못했다.대세가 시위대쪽으로 기운 것을 확인한 뒤 군부는 시위대와 우발적인 충돌을 자제하는 모습이었고,일부 장교들은 시위대 활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김동욱/강경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