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흥광 대표는…北대학교수 출신 엘리트…2003년 4월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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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1960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평양 김책공대를 졸업,함흥컴퓨터기술대학과 북한공산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공산대학에서 한국 드라마 CD,외국 도서들을 단속하는 조직에서 기밀자료 관리를 맡았다가 중앙에 올려야 할 회수물품 몇 개를 친구에게 빌려준 것이 적발돼 집단농장으로 쫓겨났다.
이는 탈북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2003년 4월 두만강 국경수비대 군인에게 북한돈 1만원(교수 시절 그의 월급은 5000원)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이듬해 2월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정착 지원금(1350만원)으로 동대문 임대주택(15평)을 얻을 때 20만원이 부족해 하나원에서 빌렸다고 한다. 그는 "'마이너스'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며 "한국에는 교수가 너무 많아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8년 6월 탈북자 출신 교수 · 엔지니어 · 의사 · 기자 · 작가 등의 지식인 300여명을 모아 NK지식인연대(www.nkis.kr)를 설립했다. 현재 계간기 '북녘마을',인터넷방송국,탈북자 자녀를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인 삼흥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월남한 부인은 서울 공덕동에서 평양음식 전문점 '유경옥'을 운영하고 있다. 외동딸은 영국 옥스퍼드대 잉글리시 칼리지에 유학 중이다.
이는 탈북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2003년 4월 두만강 국경수비대 군인에게 북한돈 1만원(교수 시절 그의 월급은 5000원)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이듬해 2월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정착 지원금(1350만원)으로 동대문 임대주택(15평)을 얻을 때 20만원이 부족해 하나원에서 빌렸다고 한다. 그는 "'마이너스'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며 "한국에는 교수가 너무 많아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8년 6월 탈북자 출신 교수 · 엔지니어 · 의사 · 기자 · 작가 등의 지식인 300여명을 모아 NK지식인연대(www.nkis.kr)를 설립했다. 현재 계간기 '북녘마을',인터넷방송국,탈북자 자녀를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인 삼흥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월남한 부인은 서울 공덕동에서 평양음식 전문점 '유경옥'을 운영하고 있다. 외동딸은 영국 옥스퍼드대 잉글리시 칼리지에 유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