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5대 기업 중 한 곳,그것도 최고급 고객이 드나드는 본사 건물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기자는 속수무책으로 10여분간 헤맸다.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직원들은 오로지 일본어로만 열심히 설명했다. "일어를 못한다"고 두어 번 말하자 "I cannot speak English(전 영어를 못해요)"라며 어눌한 한마디만 남기고 허둥지둥 등을 돌리는 직원들.경제대국에,친절하기로 둘째라면 서럽다는 일본에서 빚어질 것으로는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일본인의 영어 실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영어능력평가시험 토플(TOEFL)에서 2009년 일본의 성적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34개국 중 가장 낮았다. 아시아에선 라오스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다. "탄탄한 내수 덕택에 영어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덜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일본도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과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최근 사내에서 영어 공용어 계획을 밝히는 등 일본 기업계에 영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배경이다.

요코하마에서 지난 9~12일 열린 카메라 관련쇼 '2011 CP+(camera & photo imaging show)'에 처음으로 외국 기자들을 초청한 것도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확장을 돕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그러나 캐논 니콘 소니 등 대기업 직원들조차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기자는 이 행사장에서도 제품 정보를 얻는 데 애를 먹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하버드 등 미국 6개 명문대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유학생 숫자가 늘어난 와중에 일본은 2005년 대비 36% 급감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유학을 피하고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 '탈세계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기 소르망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아름다운 일본어' 운운하느라 한국과 일본의 영어 격차가 벌어지는 지금 상황은 메이지유신 때의 조선과 일본이 정반대로 된 느낌." 일본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2채널'에 게재된 글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이유정 요코하마/국제부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