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거부하고 조건없이 등원키로 했다. 국회가 열리는 것은 지난해 12월8일 여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이후 올 들어 1월13일 잠깐 본회의가 열린 것을 빼면 두 달여 만이다.

손 대표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민생 앞에 장님,귀머거리가 되는 청와대에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려 했는데 이 정부는 야당과 대화조차 꺼려한다"며 "뭐가 그리 두려운가. 이제 이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접겠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이 외면하는 국회에 과연 등원해야 하는지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지만 우리라도 민주주의를 따르겠다"며 "민생을 위해 국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임시국회 의제에 대해 "민생법안 외에 다른 논의는 제외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개헌 등의 정치적 이슈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구제역 대책 및 책임자 문책 △서민예산 챙기기 △남북군사회담 결렬에 따른 남북 긴장국면 △지난해 12월 예산안과 함께 강행 처리된 친수법과 서울대법인화법 등의 위법성 문제 등만 거론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손 대표가 영수회담을 접은 까닭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영수회담에서 얻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만약 등원 전에 영수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우리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게 분명한 만큼 우리로선 얻을 게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익도 없는 회담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제역,전 · 월세 대란 등 민생의 어려움이 큰 상황에서 등원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부담감도 작용했다. 온건 합리파인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제 국회에 들어가서 전 · 월세 등 민생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법,직권상정제한법 등을 민주당 주도로 다루는 것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한 몫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단독 처리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소장파들과 손잡고 이런 법안을 처리할 경우 영수회담에 매달리는 것보다 정치적 실익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등원 날짜는 여당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오랫 동안 만나지 못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인 만큼 두 분의 회동은 (앞으로)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