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회자되는 말 중에는 유독 전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무역전쟁,자원전쟁,에너지전쟁,환율전쟁,그리고 식량전쟁 등이 그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전쟁에 비유될 만큼 경쟁이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그 중 무역전쟁,자원전쟁,에너지전쟁,환율전쟁 등은 사실 65억 인구 중 살 만한 나라들 간의 전쟁이라면,식량전쟁은 15억의 살 만한 나라뿐만 아니라 50억의 못사는 나라까지도 함께 전쟁을 벌여야 하는,그야말로 인류 최대의 전쟁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식량전쟁의 시대'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앞으로 식량 공급은 한계에 이르게 돼 있다.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이상기후와 사막화 그리고 물부족 등에 의한 곡물생산의 감소는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만 하더라도 러시아와 흑해지역의 130여년 만의 가뭄,캐나다의 늦장마,아르헨티나 연안의 가뭄,호주의 폭우,인도 중국 등 건조지역에서 급속히 진행되는 농경지의 사막화 등과 같이 식량의 공급 기반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수요 측면에서 보더라도 연간 7300만명의 인구가 증가하고,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의 경제성장은 폭발적인 농축산물 수요 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식량공급은 줄어들고 소비는 늘어나면서 전 세계 곡물 재고량은 1970년대 중반 수요량 대비 30%에서 현재는 절반 수준인 18%에 머물러 있고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식량으로 소비돼야 할 곡물이 바이오 에너지 생산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약 30%,브라질 사탕수수 생산량의 약 50%가 자동차 연료인 에탄올 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농산물 무역자유화 시대라고는 하나 식량수출국들은 자국의 식량사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수출금지조치를 취할 수 있다. 2008년에는 태국 베트남 등 세계 1,2위 쌀 수출국이 쌀 수출을 중단해 쌀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곡물수출을 제한하고 있고 인도는 설탕과 면화를,파키스탄은 소맥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국제곡물시장은 카길 등 곡물 메이저들이 80% 이상의 곡물을 장악하고 있는 독과점적 구조여서 곡물가격의 불안정을 더욱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높다.

이와 같이 세계 식량의 수급과 국제곡물시장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자 곡물가격이 급등하고,세계 각국은 식량 확보를 위한 전쟁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미국과 남미로부터 각각 옥수수와 대두 수입량을 늘리는가 하면,사우디아라비아와 알제리 등 밀 소비가 많은 아랍권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비축량을 늘리는 중이다. 세계 3,4위 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도 쌀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심각한 식량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로,쌀을 포함하면 약 26.7%,쌀을 제외하면 5% 미만에 불과하다. 2010년 옥수수 밀 콩 등 곡물 수입액만도 4조원(38억달러)에 달하며,총농축수산물 수입액은 28조원(257억달러) 정도에 이른다. 세계식량수급이 조금만 원활하지 못해 가격이 폭등할 경우 우리의 식량안보는 심각한 상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식량전쟁의 시대를 맞아 쌀에만 국한돼 있는 비축제도를 밀,콩,옥수수 등의 곡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논과 밭 등 국내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곡물자급률을 최소한 30%선 이상으로 제고할 수 있도록 수매제 등 생산을 독려하는 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농정의 핵심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안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윤석원 < 중앙대 교수·산업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