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발이라면/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진눈깨비는 되지 말자/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사람이 사는 마을/가장 낮은 곳으로/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중) 문학 속의 눈은 대체로 따뜻하다. 때묻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 마음을 정갈하고 푸근하게 해주기 때문이리라.그러나 실제의 폭설은 재앙에 가깝다.

눈 무게는 습기를 얼마나 머금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1㎡에 10㎝의 눈이 쌓이면 무게를 대략 13~14㎏으로 본다. 100㎡ 넓이의 지붕이라면 1.4t이나 되는 셈이다. 두텁게 쌓인 눈이 떨어져 내리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달 초 일본 니가타현에 내린 폭설로 지붕의 눈을 치우다 추락하거나 흘러내린 눈덩이에 깔려 숨진 사람만 수십명에 달했다. 보통 높이의 지붕에서 떨어지는 눈덩이라도 단단한 나무상자를 부숴버릴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폭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눈 기록에도 재해를 몰고온 대설이 10여건에 이른다. 세종 3년(1422) 2월에는 제주도에 5~6자나 되는 눈이 내려 많은 말들이 해를 입었다. 1453년에는 서울에 3~4자의 눈이 내렸고,1526에도 함경도에 4~5자의 폭설로 100여명의 인명피해를 냈다고 한다. 기상관측 이래 우리나라에서 하루 내린 눈으로는 1955년 1월20일 울릉도의 150.9㎝가 가장 많다. 여러날 내려 쌓인 눈도 1962년 1월 울릉도의 293.6㎝가 기록이다.

강원 영동 지방에 눈이 1m 이상 퍼부은 데 이어 경남 · 북 지방에도 많은 눈이 내려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건물 비닐하우스 축사 등이 맥없이 무너져내렸고 마을 수백가구가 고립되기도 했다. 국도 7호선 일부 구간에선 차량들이 30여시간이나 도로에 서 있는 바람에 승객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휴교와 교통통제도 잇따랐다.

동해안에 폭설이 자주 내리는 것은 봄을 앞두고 남쪽에 따뜻한 공기가 형성되는 반면 북쪽에는 여전히 찬 대륙고기압이 버티면서 북동기류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찬 공기가 북동풍을 타고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동해안으로 내려오면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강한 눈구름대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폭설은 하늘 탓이라 해도 피해는 사람 힘으로 줄일 수 있다. 재해 예방 · 대응 체제를 강화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은 힘 닿는데까지 도와줄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