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손님들이 예전보다 더 짜졌습니다. 차 값은 물론 연비,세금까지 꼼꼼히 알아보고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

최근 중고차 시장의 트렌드는 '실용성'이다. 바닥 경기가 좋지 않고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손님들의 눈이 더 까다로워졌다는 게 중고차 딜러들의 이구동성이다. 수입 중고차 시장도 연비가 좋은 차만 제 값을 받는 분위기다. 서울 장안동 중고차시장과 양재동 서울오토갤러리 딜러들에게 최근 중고차 시장 동향에 대해 들어봤다.

◆소형차와 경차 손님만 늘어

최근 침체 상태인 중고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은 소형차와 경차다. 실용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베스트셀링 모델은 아반떼와 SM3,마티즈,모닝 등이다.

반면 연비가 나쁘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대형차는 비인기 차종이 됐다. SM7 RE35와 뉴그랜저 3.5 등 대형차 중에서도 배기량이 큰 모델의 수요가 특히 줄었다. 한 딜러는 "매물 순위를 보면 중형차들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지만 실제 판매는 중소형차 쪽이 강세"라고 설명했다.

같은 차종 내에서도 경제성을 따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엔진 배기량이 적어 기름을 덜 먹는 트림(세부사양)이 집중적으로 팔린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덜 드는 디젤 모델 수요도 늘고 있다. 한 딜러는 "아반떼를 찾는 고객 중 기름값 덜 드는 경유 모델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매물이 드물어 시장에 나오는 족족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쏘나타와 아반떼와 같은 스테디셀러는 새 모델이 나와도 구 모델 판매량이 줄지 않는다. 그만큼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쏘나타의 경우 NF는 1300만~1600만,EF는 600만~900만원대에 거래된다.

'엔트리카(첫차)'를 사려는 고객 중엔 1996~97년식 모델만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100만~200만원대의 부담 없는 가격에 2~3년 타다가 두 번째 차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시장 관계자는 "10년 넘은 노후 차량이라도 상태만 좋으면 시장에 내놓았을 때 기대 이상의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란도는 매물은 적지만 수요가 꾸준한 차로 꼽힌다. 3000㏄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면서도 500만~800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가 높다. 2인승의 경우 화물차로 분류돼 자동차세가 연 3만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스타렉스와 봉고, 포터와 같은 상용차들도 스테디셀러다. 영업용 차를 굳이 새 차로 장만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들이 많다는 귀띔이다. 최근 상용차들은 동남아와 중동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1년 전에 비해 가격이 100만~150만원 정도 올랐다.

◆'수입차=호화품'은 옛말

폭스바겐 뉴비틀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던 차였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연식의 다른 차종보다 20~30% 이상 가격이 더 떨어졌다. 연비가 ℓ당 11㎞대로 소형차치고는 좋지 않아서다. 반면 폭스바겐 골프 2.0 TDI는 매물로 나와 가격표를 달기가 무섭게 팔린다. ℓ당 15㎞를 넘는 연비와 2000만원대 중후반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다른 수입차들도 중소형의 실용적인 모델이 인기다. 국산차와 가격 차가 크지 않은 2000만~4000만원대 차량 판매가 대부분으로 BMW 3 또는 5시리즈,벤츠 C클래스,아우디 A4 등 유럽 브랜드의 중소형 모델이 판매 상위권에 올라 있다. 반면 벤츠 S600 등 고가의 대형 모델들은 수요가 없어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연비가 좋은 디젤 차량은 가격대를 불문하고 강세다. 폭스바겐 파사트디젤 모델도 골프 2.0 TDI만큼이나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 차량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ℓ당 29.8㎞의 연비를 갖췄고 가격도 신차의 50~60%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판매가 부진하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부족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리콜 사태의 여파로 도요타와 렉서스 브랜드 차량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때 가장 있기 있는 모델 중 하나였던 렉서스 IS250은 지난해보다 시세가 100만원 정도 하락했다. 포드 토러스,크라이슬러 300C 등 미국 차들도 연비가 나쁘다는 평가 때문에 거래가 부진하다.

연예인들이 즐겨타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크래프트 밴' 역시 찬밥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신차 가격은 약 1억원.하지만 중고차 시장에 나오는 순간 가격은 5000만원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ℓ당 약 5㎞의 낮은 연비 때문이다. 한 수입 중고차 딜러는 "엔터테인먼트나 이벤트 업계에서 가끔 찾긴 하지만 연비 때문에 못 버티고 되팔러 온다"며 "길에 다니는 이 차량은 대부분 가스로 개조해서 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박한신/정소람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