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얼마나 살 수 있죠? 몇 분,몇 시간,며칠?" 검은 스크린에 "이게 나의 세상입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블랙(black)'.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소녀 미셸과 그녀가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평생을 헌신한 사하이 선생.그 후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병으로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블랙에 빠진 사하이 선생의 눈과 귀가 되어주겠다고 하는 미셸.필자는 2008년 인도판 헬렌 켈러 이야기를 다룬 산자이 렐라 반살리 감독의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청계산을 등산했다. 청계산을 오를 때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등산했던 자원봉사활동이다. 50대 중반의 시각장애인과 팔짱을 끼고 청계산을 올랐다. 청계산 입구에 들어서자 그분이 '산의 냄새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30대에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분은 사고 전에는 물론 사고 후에도 등산을 해본 적이 없어 처음 산을 오른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분은 등산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등산을 하는 동안 내 스스로 마음의 눈을 뜨고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때의 축복을.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쓴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에 '마이너스 이온의 법칙'이 나온다. 실수 및 실패 경험이나 콤플렉스와 같은 마이너스 모드의 이야기들이 플러스 모드의 이야기들보다 인간관계를 더 돈독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실패 경험이 듣는 상대방에게는 플러스 이온으로 들어와 마음을 치유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흔히 행복은 공기와 같다고 한다.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중요도를 느끼지 못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되고 또 손으로 꽉 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은 새로운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것은 사회지도층의 의무(oblige)가 아니라,사회 지도층에게 주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SK그룹에서는 사회공헌활동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저마다 지닌 힘과 지식을 나누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필자의 회사도 연간 근무시간 1% 수준에서 아동 노약자 장애우 등 소외계층 돕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전사 차원에서 소비 저축 기업활동 등 경제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청소년 경제교실을 통해 초 · 중 · 고교생에게 바른 경제관을 형성하도록 힘쓰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얻기 위해 얼마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반성해 본다. 영화 블랙에서 '지구에 대양이 몇 개 있니?'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미셸은 말한다. '제겐 물 한 방울도 모두 대양이에요. '

이현승 SK증권 대표 hyun-seung.lee@s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