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격 담합사건 심리가 열린 지난해 12월16일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한 현직 변호사가 참고인 변론을 위해 출석했다가 공정위 소속 공무원에 의해 심판정 밖으로 끌려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청석 자리가 부족하다"는 등의 사유였다.

당사자인 오영중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조력할 권리,알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서울지방변호사회도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공정위를 강하게 성토했다. 공정위는"(오 변호사가 대리한) 낙농육우협회장은 참고인이 아니라 참관인이어서 변호사 조력권이 침해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오 변호사는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6월 협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며 반박했다.

공정위,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검찰 등 기업 사정기관들이 조사 및 수사 대상 기업들의 정당한 변호사 조력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행정심판 과정에서 변호사를 끌어내는가 하면,고해성사 내용과 다름없는 기업과 변호사 간의 자문 내용을 압수하거나 제출을 요청하기 일쑤다.

기업인에게 변호사를 대동케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혐의를 추궁한 금감원 조사 관행이 최근 대한전선-도이치증권 주가조작 사건에서 불법으로 판결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기업조사 권한을 가진 일부 기관들이 기업들을 조사하면서 으레 '로펌으로부터 받은 1년치 법률자문 내용을 몽땅 제출하라'는 식으로 요구한다"며 "이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을 보장토록 한 형사소송법과 변호사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지만 기업들이 '괘씸죄'에 걸릴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내주곤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등이 "기업에 자료 제출을 서면으로 요구하고 있고 로펌과의 법률 자문 내용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형사소송법을 꿰뚫고 있는 검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A건설 법률자문 압수수색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A건설사 직원들이 정비사업자에게 뇌물을 건넨 사건을 수사하면서 2007년 해당 건설사 재건축 사업소를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혐의가 명시된 법무법인의 의견서를 가져갔고,이를 법원에서 증거로 사용했다. 더욱이 의견서를 작성한 변호사에 대해 건설사의 혐의를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증인으로 신청했다. 변호사는 법정에 나왔지만,"의뢰인과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기업의 동의 없이는 변호인과 기업 사이에 비밀리에 이뤄진 법률 자문 내용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