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과 70일 합숙 현대판 맥베스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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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맥베스' 연출가 젤딘
표현의 도구는 달라도 카타르시스 방식은 같아
홍상수 감독과 작품 하고파
표현의 도구는 달라도 카타르시스 방식은 같아
홍상수 감독과 작품 하고파
"밀양에서 보낸 70일,날씨는 너무 추웠지만 배우들의 열정은 더없이 뜨거웠어요. "
영국 연극연출가 알렉산더 젤딘(26 · 사진)은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을 경남 밀양연극촌에서 보냈다.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해외 연출가 교류전의 첫 초청자로 한국에 온 그는 여기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만들었다. 지난 8일 막을 올린 '맥베스'는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명륜동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맥베스가 감정을 너무 격하게 치고 올라가면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해요. 조금 더 부드럽게 고조됐으면 좋겠는데…."
지난 주말,공연을 마친 후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젤딘은 영국 국립극장 스튜디오의 젊은 연출가 발굴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예.2007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사상 최연소 연출가로 데뷔했다. 현재 유럽 및 중동의 예술가들과 함께 오페라 ·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다.
"지난해 4월 루마니아에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이던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햄릿'을 봤어요. 강렬하고 뭔가 많이 달랐어요. 영국에선 셰익스피어 작품이 숱하게 공연되지만 단조로운 편이거든요. "
이 감독은 이 페스티벌을 계기로 영국 국립극장과 인연을 맺고 퍼니 모렐 예술감독의 추천으로 젤딘과 무대미술가 사말 블랙을 초청했다. 이 감독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젤딘은 극장의 제안을 듣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젤딘의 '맥베스'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는 전쟁 활극인 원작을 탐욕스런 중산층 부부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바꿨다. 배경은 맥베스의 집안 거실이고,부부 간 사랑 표현도 대담하다. 결국 맥베스 부부는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행복한 미래를 위해 던컨왕을 죽이게 된다. 살인의 순간부터 그들의 사랑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독특한 시각이 돋보인다.
젤딘은 이에 대해 "어머니가 마흔 셋에 나를 낳았다. 맥베스를 보면서 아기가 없는 부부가 삶의 다른 측면에서 삶의 의욕을 찾아가다 욕심이 지나쳐 파멸하는 과정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공연 내내 무대 조명은 시시각각 변한다. 무대 뒤 어두운 구석에 켜진 작은 TV에는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영상이 나온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상징하듯 동물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배우들의 머리 위에서 이들을 관찰하는 카메라는 시종일관 맥베스의 얼굴을 무대 뒤에 투사한다.
열다섯 살 때부터 글을 쓰고 연출을 했다는 그이지만 아시아 방문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는 "언어가 달랐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며 "배우들과 표현의 도구는 달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은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또 오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몇 달 안에 또 올 겁니다. 사라 케인 작품 같은 현대극도 해보고 싶고,오페라도 올리고 싶어요. 아,그땐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홍상수 씨도 만나야 돼요. 같이 작품 만드는 게 꿈이거든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영국 연극연출가 알렉산더 젤딘(26 · 사진)은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을 경남 밀양연극촌에서 보냈다.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해외 연출가 교류전의 첫 초청자로 한국에 온 그는 여기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만들었다. 지난 8일 막을 올린 '맥베스'는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명륜동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맥베스가 감정을 너무 격하게 치고 올라가면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해요. 조금 더 부드럽게 고조됐으면 좋겠는데…."
지난 주말,공연을 마친 후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젤딘은 영국 국립극장 스튜디오의 젊은 연출가 발굴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예.2007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사상 최연소 연출가로 데뷔했다. 현재 유럽 및 중동의 예술가들과 함께 오페라 ·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다.
"지난해 4월 루마니아에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이던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햄릿'을 봤어요. 강렬하고 뭔가 많이 달랐어요. 영국에선 셰익스피어 작품이 숱하게 공연되지만 단조로운 편이거든요. "
이 감독은 이 페스티벌을 계기로 영국 국립극장과 인연을 맺고 퍼니 모렐 예술감독의 추천으로 젤딘과 무대미술가 사말 블랙을 초청했다. 이 감독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젤딘은 극장의 제안을 듣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젤딘의 '맥베스'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는 전쟁 활극인 원작을 탐욕스런 중산층 부부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바꿨다. 배경은 맥베스의 집안 거실이고,부부 간 사랑 표현도 대담하다. 결국 맥베스 부부는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행복한 미래를 위해 던컨왕을 죽이게 된다. 살인의 순간부터 그들의 사랑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독특한 시각이 돋보인다.
젤딘은 이에 대해 "어머니가 마흔 셋에 나를 낳았다. 맥베스를 보면서 아기가 없는 부부가 삶의 다른 측면에서 삶의 의욕을 찾아가다 욕심이 지나쳐 파멸하는 과정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공연 내내 무대 조명은 시시각각 변한다. 무대 뒤 어두운 구석에 켜진 작은 TV에는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영상이 나온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상징하듯 동물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배우들의 머리 위에서 이들을 관찰하는 카메라는 시종일관 맥베스의 얼굴을 무대 뒤에 투사한다.
열다섯 살 때부터 글을 쓰고 연출을 했다는 그이지만 아시아 방문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는 "언어가 달랐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며 "배우들과 표현의 도구는 달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은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또 오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몇 달 안에 또 올 겁니다. 사라 케인 작품 같은 현대극도 해보고 싶고,오페라도 올리고 싶어요. 아,그땐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홍상수 씨도 만나야 돼요. 같이 작품 만드는 게 꿈이거든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