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항구에 '식민지의 추억'만 있는 건 아니다. 이번 여행은 식민지 '공출항' 이후 오랜 정체기를 지나온 군산항의 새 성장 동력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금강하구둑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과 전북 군산시 성산면을 잇는 1841m의 둑이다. 1990년 완공 이래 연간 3억6000만t의 물을 비축해 전북 · 충남 일원에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둑 위로는 군산과 장항을 잇는 도로와 신장항~군산 간 장항선이 지나고 있다. 하구둑은 군산 도선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이나 가야 장항에 도착했던 옛 추억의 '종결자'다.

갈대숲이 많은 금강하구는 고니,청둥오리,검은 머리물떼새,검은머리갈매기 등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좋은 곳이다. 겨울이면 갈대숲을 찾아 날아드는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금강철새조망대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개점휴업' 중이다.

◆세월 저 너머로 사라진 째보선창

채만식문학관과 시비공원을 지나 '구불길'을 강과 함께 걷는다. 옛적엔 봄이 되면 종어,황어,웅어,숭어 등 회귀성 어종이 거슬러 올라오던 물길이다. 젊은 시절 쪽배를 타고 '시라시(실뱀장어)'를 잡아 짭짤하게 수입을 올렸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죽성포구에 닿는다. '째보선창'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했던 포구다. 전라우도 군산진지도에도 등장하는 죽성포구는 조선말까지는 삼남의 농산물 등을 서울로 올려보내던 꽤 중요한 선창이었다.

'째보선창'이라 부른 것은 지형이 째진 모양이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죽성포구를 주름잡던 째보라는 객주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 째보선창은 군산의 식민지 시대상을 풍자한 채만식 소설 '탁류'의 배경이기도 하다. 군청 서기직에서 쫓겨난 여주인공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가 서천 땅을 처분하고 똑딱선을 타고 군산으로 건너온 곳,쌀을 현물 투기하던 미두장에서 돈을 탕진한 뒤 자살을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째보선창은 그러저럭 흥청거렸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 7권에 나오는 실컷 얻어맞고서도 낄낄거리던 '째보선창 갑술이'나 뱅어잡이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째보선창 천씨',질펀하게 욕을 발사하던 '째보선창 주모' 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째보선창은 금강하구둑 완공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매립돼 버렸고,이 선창으로 들어온 고깃배에서 고기를 받던 동부어판장도 해망동으로 떠나버렸다. 이젠 '째보선창길'이라는 도로표지판과 미처 떠나지 못한 어구 판매점,어선 수선 점포들만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군산의 터줏대감 격이었던 고 이병훈 시인이 '태어나는 날씨마다 흐리다/ 태어나는 바람이 짜다/ 흐리고 짠 우리들의 물결 안에/ 소주보다 독한 피를 나눌 때는 올 것인가'(시 '째보선창' 부분)라고 노래했던 곳,반듯하지 못한 자식을 바라보듯 애틋한 감성을 자극했던 포구는 몇 편의 시만 남긴 채 세월 저편으로 사라졌다. 매립지 앞바다에는 빨간 색칠을 한 동암 등대가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곱씹고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은파관광지까지

군함과 전투기 등을 전시해놓은 진포해양에 이른다. 금강하구는 1380년(우왕 6년) 최무선 장군이 500척의 왜선을 화포로 격멸했던 진포대첩의 현장이다. 2006년 말에 퇴역한 후 테마공원으로 시집온 4200t급 위봉함에 올라 해군 병사들의 선상 생활을 들여다본다. '접이식 그네'처럼 생긴 사병들의 침대,방열하의,구명동의,구명부환 등이 눈길을 끈다.

퇴역할 줄 모르는 일제강점기의 유물,내항의 부잔교들을 일별하며 도선장에 닿는다. 1952년 이래 군산 · 장항을 오가던 배들은 재작년에 운행을 멈췄다. 봄 · 가을이 없는 항구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강바람에 섞여 어디선가 비린내가 확 풍겨온다. 도선장 왼편에선 장항 도선장으로 이어지는 군장대교(1.1㎞) 공사가 한창이다. 2013년에 완공 예정인 이 다리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여당이 내건 공약이었다.

한창 제철인 물메기들이 거들먹거리는 입구의 건조대를 지나 해망동 수산물센터로 들어선다. 물메기,아귀,꽃게,망둥어,삼식이,간재미 등이 부동자세로 손님을 맞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옥구현조에 '현의 서북쪽 10리에 있는데 둘레가 1만910척이다'고 소개된 미제지로 향한다. 이젠 서양악곡의 냄새를 풍기는 '은파관광지'가 된 미제방죽이 객을 맞는다. 370m 길이의 보도(步道) 현수교가 호수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방죽 초입에 서 있는 고은의 '삶'이란 시비를 들여다본다. '(전략)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또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안다 하겠는가/ 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 무정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갈 일이다. ' 그렇다.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며 몸으로 사는 게 진짜 삶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3㎞가량 떨어진 미룡리 용둔부락(현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은 고은 시인의 고향이다. 고은의 '만인보' 초기 시집들 속에는 '물지게 물 하나도 흘리지 않는' 분임이 등 미제 언저리에 살던 무지렁이 열댓명이 등장한다.

◆거칠 것이 없어라,서해를 가르는 저 유장한 직선

33㎞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로 향한다. 개당 750W의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발전기 10개가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는 비응도 풍력발전소와 비응항 수산시장을 들여다보고 나서 방조제를 달려 오식도→ 야미도→비응도→ 신시배수갑문→가력배수갑문(옥도면 비안도리)에 이른다. 1호 방조제(부안 변산면 대항리~가력도 4.7㎞)를 제외한 여기까지가 군산시 관할이다.

4개 구간,2개의 갑문으로 이뤄진 긴 방조제가 한마리 갈치처럼 바다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9년의 긴 공사 끝에 준공한 새만금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보다 500m 긴 세계 최장의 방조제다. 또한 문보다 2개 많은 10련의 갑문을 가진 신시갑문도 우리나라 최대의 배수갑문이다. 암반 위에 설치한 폭 30m,높이 15m의 거대한 수문은 유압으로 들어올리는 데만 45분이 걸린다고 한다.

새만금방조제 완공으로 401㎢(토지 283㎢,담수호 118㎢)에 달하는 육지가 생겼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해당한다. 바닷물이 다 빠지고 나면 이곳엔 첨단산업단지와 신재생에너지단지,관광단지,배후도시,국제업무단지,신항만 물류단지 등이 들어설 것이다. 그에 앞서 환경보전 가치와 개발 가치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제1방조제 너머에서 손짓하는 내변산을 뒤로 한 채 돌아선다. 신시도 갑문을 지나자 좀전에 지나갈 적엔 보이지 않던 선유도 · 무녀도 등 고군산열도가 돌연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선유도 망주봉이 슬슬 비상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아는가. 시기를 잘 타면 무생물인 섬도 한 마리 바닷갈매기가 되는 세상 이치를.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유람선 타고 고군산군도 한바퀴…'밥도둑' 꽃게장정식, 밑반찬도 푸짐하네

◆ 맛집

설날에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해서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부르는 떡국을 먹었다. 떡국은 대표적인 '외식금지' 품목이다. 박남준 시 '떡국 한 그릇'은 왜 떡국이 '외식금지' 음식인지 극명하게 말해준다. '(전략) 게 누구여,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

반면 꽃게장정식 같은 음식은 '외식장려' 음식이다. 집에서 담근 꽃게장 먹기를 바란다면 그는 의심할 바 없는 '마초'다. 다행히 군산에는 많은 꽃게장정식집이 있다. 영화동 15의11 한주옥(063-445-6139)은 꽃게장정식이 맛나기로 소문난 집이다. 꽃게장정식을 시키면 다양한 음식들이 딸려나온다. 돼지고기 편육,꽃게튀김,회,아귀찜,매운탕과 갈치조림,양배추 샐러드 등 밑반찬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꽃게장백반 1만2000원,꽃게장정식 1만7000원.

◆ 여행 정보

군산 내항에서 약 50㎞가량 떨어진 고군산군도는 선유도,무녀도,장자도,신시도,방축도 등 63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다. 선유도의 낙조와 명사십리와 망주봉,장자도의 사자바위와 할미바위,방축도의 독립문바위,명도와 횡경도의 해안 절경,말도의 갈매기 등이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비응항 월명유람선 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면 고군산열도와 새만금방조제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유람선운항 코스=비응항(월명유람선 전용선착장→새만금방조제→횡경도(할매바위,동문)→방축도(떡바위,독립문 바위)→장자도(가마우지섬,할매바위,장자대교)→선유도(남문,인어등대,장군바위,삼도귀범,선유대교)→선유도 선착장 도착(자유시간)→선유도 출발(명사십리,망주봉)→신시도,야미도→닭섬→새만금방조제→비응항 도착.A코스 1시간30분 소요(1만5000원),B코스 약 3시간(2만원,선유도에서 1시간 자유시간),C코스 약 6~7시간(3만원,선유도에서 4~5시간 자유시간).운항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월명유람선 홈페이지(wmmarine.com) 참조.(063)445-5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