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사회 공동체의 문제 등 하루에도 갖가지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까요. 만일 여러분이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를 내는 중고차를 몰고 길을 달리는데,빨간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내 앞에 끼어들었다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먼저 매너 없이 끼어든 차 주인에게 욕을 하고 싶을 테고,화가 좀 가라앉으면 스포츠카와 초라한 자신의 차를 비교하면서 '나도 저런 멋진 차를 타고 다니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라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문제란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 상태 사이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멋진 스포츠카를 꿈꾸는 상태와 낡은 중고차를 가진 현재 상태 사이의 갭(gap)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거죠.기대하는 상태와 현재 상태 사이의 차이로 문제를 정의 내리면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서 문제의 크기를 0으로 만드는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공포와 비슷한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서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시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나 혹은 우리의 것이라고 여긴다면 소위 공포심이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압도하기 쉽습니다. 의식적으로 문제를 '타자화(他者化)'하면 문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누그러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반드시 멋진 해결책을 빨리 내놓고 말 테야'라는 의욕이나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서둘지 말라는 것이죠.'못 풀어도 좋으니 일단 알아나 볼까'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문제를 해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단어인 'solve'는 라틴어인 솔베레(solvere)에서 유래했는데,'문제를 바로잡다' 혹은 '문제를 제거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풀어헤치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저 앞에 놓인 꾸러미를 열어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행위가 '해결(solve)'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독창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급한 문제를 접할 때마다 해결책부터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죠.하지만 궁지에 몰려서 생각해 낸 해결책은 쓸모없거나 여러분을 또 다른 위험에 빠뜨리고 맙니다. 문제를 면밀히 살펴보고 '아,문제란 이런 모양이구나' 하고 인식한 다음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두려움 없이 문제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죠.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해법은 문제를 얼마나 잘 정의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정찰기 U-2기는 비행 고도가 2만m에 달하기 때문에 옛 소련의 요격기가 따라 올라가서 격추시키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잠 못 이루던 소련의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어떻게든 U-2기를 격추시킬 방법을 찾아내라고 부하들을 닦달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 5월11일,U-2기가 격추되고 조종사가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필시 소련이 최신식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생각한 것이죠.흐루시초프는 이때다 싶어 당황하는 미국을 골려주려는 듯 "우리 소련에는 세계 어디라도 요격 가능한 최신식 미사일이 있다"고 호기롭게 떠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그만한 성능의 미사일도 없었고,2만m 이상의 고도를 비행할 전투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소련이 미국의 U-2기를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은 문제를 재정의함으로써 해법을 독창적으로 생각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갖은 노력 끝에 아프가니스탄 공군 조종사 하나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 U-2기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습니다. 또 이 사람에게는 공군 기지의 식당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와 만나는 척하면서 비행장에 접근했습니다. 수리하기 위해 비행장에 세워둔 U-2기에 몰래 다가가 고도 계기판에 있는 네 개의 나사 중 하나를 빼낸 뒤 똑같은 모양의 나사를 대신 끼워 넣었습니다.

그 나사는 매우 강력한 자성을 띠는 것이라서 고도계의 바늘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1만m밖에 상승하지 않아도 이미 2만m에 오른 것처럼 계기판이 작동하고 말았습니다.

조종사는 이런 고도계를 보고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겠죠.1만m 정도는 당시 소련이 갖춘 미사일로도 충분히 요격이 가능한 사정거리였기 때문에 U-2기가 격추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소련의 문제 정의방법

소련 측이 당초에 정의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U-2기 때문에 골치 아픈 상태'='U-2기를 요격할 미사일이나 전투기 개발'.문제를 이렇게 정의하면,U-2기에 대항할 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해법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해법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새롭게 정의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U-2기가 높이 상승했다고 착각하는 상태'='U-2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이를 위해서 U-2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아프가니스탄 조종사를 포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자석으로 만들어진 나사로 고도계가 오작동을 일으키게 하는 방법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일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고 신속한 해법입니다. 이처럼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재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문제해결사의 지혜입니다.

◆문제해결사에게 필요한 것

문제를 잘 정의할 줄 아는 능력은 문제해결사가 갖춰야 할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일찍이 손무(孫武)는 '손자병법(孫子兵法)''형(形)'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놓고 적과 싸우고,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승리를 추구한다(勝兵先勝而後求戰,敗兵先戰而後求勝).'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손무의 말은 '유능한 문제해결사는 해결이 쉽도록 문제를 잘 정의한 뒤에 문제를 풀며,무능한 문제해결사는 문제를 정의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해결에 덤벼든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든 종이 위에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기술하는 '문제 정의' 단계가 문제해결의 첫걸음입니다. 여기에 여러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정의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능력을 덧붙인다면 여러분은 문제해결사가 지녀야 할 기본을 다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똑똑한 문제해결사는 해법을 금방 생각해 내기보다는 문제를 잘 정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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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졸업,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기아자동차,LG-CNS,아더앤더슨,왓슨와이어트 전략 컨설턴트 및 HR 컨설턴트 △저서='시나리오 플래닝' '경영·과학에게 길을 묻다' '경영유감'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