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부산저축은행의 6개월 영업정지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 초량동에 있는 부산저축은행 본점에는 이른 시각부터 수백명의 고객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애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본점을 찾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영업장 출입문을 보고는 삼삼오오 모여 사실 관계를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 돈 어쩔거냐"는 항의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영업장 입구에서 만난 고객 김영숙 씨(67)는 "전 재산을 털어 내 이름으로 4개 계좌에 나눠 1억7000만원을 맡겼는데 5000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한다고 해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지를 못하겠다"고 울먹였다. 이어 "최근 부산저축은행이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나흘 전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듣고 안심했는데 이런 일이 터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퇴직금으로 받은 4000만원을 맡겼다는 신경철 씨(61)는 "부산에서 가장 큰 대형 저축은행이라 안전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영업정지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150여명의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은 예금 업무가 올스톱되면서 그저 손을 놓고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날 함께 영업정지된 대전저축은행 서울 명동지점.오전부터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고객들이 몰리자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막았다. 일부 고객이 문을 두드리며 격렬하게 항의하자 그제서야 선별적으로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고객 이명순 씨(53)는 "예금이 2600만원 있는데 만기가 다음 달 14일"이라며 "그걸로 다음 달 28일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제 예금을 찾으러 방문했는데 직원이 '지금 찾으면 이자를 5만원 덜 받게 되니 만기 때 찾으라'고 했다"며 "직원들은 회사 내부 사정을 뻔히 알았을 텐데 나를 속인 것 같아 분하다"고 덧붙였다.

한 60대 여성 고객은 직원을 붙잡고 "예금 만기가 내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이다"며 "빨리 내 돈부터 찾아달라"고 소리쳤다. 자신을 71세의 은퇴 생활자라고 밝힌 한 고객은 "9개 저축은행에 돈을 분산 예치해 매달 100만원 정도의 이자를 받아 살고 있다"며 "얼마 전 영업 정지를 당한 삼화저축은행에도 예금을 맡겼는데 자꾸 이런 일이 생겨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앙부산과 전주 부산2 등 부산저축은행 계열사들은 영업정지는 피했으나 이날 잇단 예금 인출로 곤욕을 치렀다. 특히 서울 논현동 서울세관 사거리 일대에는 중앙부산 전주 대전(서울센터지점) 등 부산계열 3개 저축은행 지점이 반경 500m 내에 밀집해 있어 이들 영업점마다 돈을 찾으려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이들 저축은행은 그동안 고객 공유 등을 통해 영업 시너지를 창출했지만 입지적 장점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뱅크런을 키웠다.

중앙부산저축은행 논현동 지점에만 이날 2000여명이 방문,150억원이 넘는 예금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방문객의 3배,인출액은 2배 규모다. 지점 관계자는 "아직까지 15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예상보다 예금 인출 규모가 커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주에서도 이날 150억여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전주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가용자금이 500억원 정도인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흑자 도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서울=이호기/이태훈/정성택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