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18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기자들과 만나 "봉사하는 마음으로 회장직을 열심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회색 캐주얼 재킷에 하늘색 셔츠,연회색 조끼를 입은 허 회장은 특유의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전경련 회장직 수락 배경과 관련, "원로 자문단과 회장단의 요구가 너무 강력해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허 회장의 얘기처럼 이번 전경련 회장 추대와 수락 과정은 재계가 모처럼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관철시킨 스토리로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허 회장과 경쟁관계를 형성할 만한 특정인이 없었으며 비토하는 목소리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허창수 회장 추천

당초 전경련이 추대 1순위로 꼽은 인물은 자타가 공인하는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회장단은 지난해 7월 조석래 현 회장이 지병을 이유로 전경련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자 두 차례나 이 회장을 찾아가 회장직 수락을 읍소하다시피 했다. 이 회장은 즉석에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우회적인 화법과 간접적인 경로로 전경련을 맡기 어렵다는 생각을 완곡하게 전달했다. 당시 경영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않은 시점에서 애플과의 '스마트 전쟁'에 올인하고 있던 이 회장 입장에선 다른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회장은 회장단이 차기 수장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일부 총수들을 직접 거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허창수 회장의 이름도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몽구 회장 "기업 규모 갖춘 60대 총수"

이건희 회장을 설득하는 일이 어렵게 되자 회장단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항간에는 정 회장이 과거 전경련 회장직을 10년이나 맡았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생각해 전경련에 적잖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연초 서울 양재동 사옥을 방문하겠다는 전경련 회장단의 요청을 정 회장이 선선히 수락하자 그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1시간30분여에 걸친 만남은 정 회장의 거절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미련을 버리기 어려웠던 회장단은 회동 직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웅을 나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게 "아버지를 한번 더 설득해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정 부회장은 "아버지가 지금 벌여놓은 자동차 사업에 워낙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어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정 회장은 스스로 고사하면서도 이건희 회장처럼 차기 전경련 회장 추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은 설명했다고 한다. 이 회장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실명을 거론하는 대신 "연륜을 갖춘 60대 연령의 회장 중 기업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허 회장은 이런 기준으로 보더라도 적임자로 평가할 수 있다.

◆조양호 · 박용현 회장 "사정이 있다"

구본무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은 별도의 주문이나 조건 없이 "새 회장이 누가 되든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터라서 입체적 의견수렴에 대한 전경련 사무국의 부담을 덜어줬다.

물론 허 회장이 유일한 추대후보였던 것은 아니다. 조양호 한진 회장과 박용현 두산 회장도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의 경우 올림픽 유치가 성사될 경우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조 회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70세쯤 되면 (전경련 회장직 수행을) 생각해보겠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재계에 투신한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고사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병원장을 지냈으며 2007년에야 두산건설 회장을 맡으며 기업 경영을 시작했다. 두산그룹 회장직을 맡은 것은 2009년부터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