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은 스스로를 용의 자손이라고 여긴다. 건국신화에도 바다의 용신이 등장한다. 용신의 아들과 산신의 딸이 결합해 낳은 커다란 알 자루 속에서 100명의 아들이 탄생한다. 물과 산의 종족이라서 어울리지 못한 둘은 아들 50명씩을 데리고 바다와 산으로 간다. 이후 산신의 아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베트남 신화 속 첫 국가인 반랑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다에 그린 수묵화

자신들이 용의 자손이라는 생각은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오토바이 헬멧 착용 의무화 논란이 일었을 때다. "헬멧을 쓰면 하늘의 용신이 자손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운 반대 주장도 나왔다. 이런 생각은 하롱베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북부 하노이 동쪽 해안도시인 하롱 앞바다 1500㎢ 해역. 하롱베이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용이 하늘에서 달려내려와 여의주를 내뿜으며 침략자를 무찌른 성지다. 지명에도 용이 들어 있다. '하(下)'는 '내려온다','롱(龍)'은 상상 속의 동물 용,즉 '하늘에서 용이 내려온 곳'이란 뜻이다. 하롱베이는 바다 쪽에서 침입한 외적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3세기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베트남군은 섬 사이의 얕은 물길에 말뚝을 박고 매복했다. 이곳 바다 지형에 어두웠던 몽골군의 배가 말뚝에 걸려 오도가도 못할 때 공격을 퍼부어 대승했다는 것이다.

하롱베이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연관짓기는 어렵다. 2000개에 가까운 석회암 섬과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어울린 풍광이 정말 환상적이어서다. 베트남 사람들의 믿음대로 크고 작은 섬 하나하나가 실제 용이 내뿜은 여의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다의 구이린(桂林)'이란 표현에 특유의 아름다움이 함축돼 있다. 1994년엔 자연경관을,2000년엔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롱베이에서는 크루즈 관광이 최고다. 크루즈 관광만을 위해 찾는 곳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보통은 당일 크루즈를 택한다. 1박2일이나 2박3일 크루즈를 추천할 만하다. 아기자기한 풍경의 위쪽 바이틀롱 해역과 섬의 선이 굵은 아래쪽 하롱 해역을 모두 둘러보는 일정이다. 바야크루즈 같은 전통 유람선이 멋지다. 선착장을 나서 한 시간 정도 유람하면 잔잔한 바닷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기암이 마중한다. 섬은 멀리서 보면 한 몸으로 이어져 바다를 호수처럼 감싸안은 것 같다. 사실은 제각각 떨어져 있다.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코끼리 낙타 주전자 등 이름이 붙여진 것만 1000여개를 헤아린다.

◆외딴 수상마을과 동굴

수상마을이 신기하다. 하롱베이 일대에 5곳의 수상마을이 있다. 마을마다 20~30가구가 모여 산다. 봉비엔이 제일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다. 바다 위에 떠 있지만 깊은 산중 마을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방이 높은 섬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5~6명씩 카약을 저으며 구경한다.

수상마을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육지에서와 똑같은 일상이 펼쳐진다. 바지선 위를 마당 삼아 노는 아이들 모습이 귀엽다. 초등학교와 은행도 있고, 과일이며 생선을 배에 싣고 팔러 나가는 어른들의 표정도 익숙하다.

바다 위의 동굴 구경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의 섬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많다. 발견된 동굴은 50여개를 헤아린다. '놀라운 동굴' '하늘궁전 동굴' '나무 감춘 동굴' 등 3개가 개발됐다. 가장 크고 넓은 게 '놀라운 동굴'이다. 동굴 내부가 3개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커져 절로 놀라게 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과연 동굴의 크기가 놀랍다. 종유석이며 석순의 형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녀가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고,닭이 목을 빼고 우는 것 같은 종유석 등 기기묘묘하다. 1만8000년이나 됐다는 석순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진다. 이곳에까지 바닷물이 찼음을 말해주는 천장의 물결 무늬에서도 눈을 뗄 수 없다.

하늘궁전 동굴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유람선이 들르는 동굴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흰눈 선녀 동굴이라고 불렀다. 이름의 느낌이 좋은 동굴이다. 서늘한 공기가 피로를 씻어주는 용왕의 궁전이라고 할 만하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팁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 동쪽 해안 전체에 걸쳐 있다.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북부의 하노이.국토는 한반도의 1.5배이며 인구는 8200만명.54개 민족이 어울려 산다. 대다수가 베트(또는 킨)족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기후 특성을 보인다. 남부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우리나라의 가을부터 봄까지가 건기다. 북부는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사계절이 있다. 통화단위는 동.요즘 환율은 1달러에 2만동.한국보다 2시간 늦다.

베트남항공(02-757-8920)이 인천에서 매일 오전 10시35분 출발하는 하노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대한항공(1588-2001)과 아시아나항공(1588-8000)도 매일 하노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는 중간 휴식시간을 포함해 버스로 4시간가량 소요된다. 180㎞ 떨어져 있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하롱베이에서는 당일치기나 숙박 크루즈를 선택해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