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의 코텍을 들어서면 조형미가 뛰어난 건축물에 놀라게 된다. 잔디밭과 노송으로 조경을 한 데다 현대식 미술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외관이 아름답다. 1층 로비를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기하학적 구성으로 유명한 칸딘스키의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반도체 공장처럼 밝고 깨끗하다.

2009년 9월 준공식을 한 뒤 거래처인 일본 NEC 임원들이 이 회사를 방문했다. 인솔자는 "우리 공장 중에도 이만큼 뛰어난 시설을 갖춘 공장이 있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온 바이어는 공장을 보자마자 모니터를 주문했다. 그동안 생산시설에 대한 확신이 없어 주저하다가 현대식 공장을 직접 본 뒤 막바로 주문한 것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이한구 회장(62)은 서울 오류동 30여평 남짓한 지하 셋방에서 코텍을 창업한 이후 25년 동안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로 산업용 모니터 한우물을 파왔다. 부천과 주안을 거쳐 2009년 인천 송도에 본사를 건립했다. 대지와 건물이 각각 약 2만㎡ 규모로 산업용 모니터 업체로선 규모도 제법 큰 편이다. 이를 계기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코텍은 전 세계 카지노용 모니터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 고지를 넘어선 중견기업으로 세계 10대 카지노 게임기 생산업체 중 9개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509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코텍은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첫째,이 회사는 품질 향상에 온 힘을 쏟았다. 품질 향상에 관한한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는 뼈아픈 기억이 담겨 있다. 1997년 3월.미국 네바다주 리노에 이 회장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리노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해 해발 고도가 매우 높다. 봄이라고 하지만 타호호수 너머에 있는 높은 산위에는 아직 눈이 남아 더욱 스산했다. 그는 회사의 명운이 걸린 리콜을 제안하려고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리노는 세계 최대 카지노 게임기업체인 IGT 본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납품한 카지노용 모니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카지노용 모니터는 24시간 365일 돌아가야 한다. 이번엔 꼭 잭팟을 터트리겠다며 눈을 부릅뜨고 버튼을 눌렀는데 모니터가 먹통이 되면 고객의 심정이 어떨까. 그런데 자사가 납품한 모니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책임을 모두 인정하고 "전부 회수하겠다"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뒤 정작 놀란 것은 IGT 관계자들이었다. 당시에 코텍은 아주 작은 업체였다. 리콜 때문에 만약 코텍이 망한다면 자사의 영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판이었다. IGT 관계자는 "애프터서비스를 철저히 해주되 그 대신 앞으로 코텍에 더 많은 물량을 주문하고 단가도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장의 진심 어린 사과 표시에 감동한 것이다. 카지노 모니터 사업 초기에 발생한 이 일을 계기로 이 회장은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겠다"고.

모니터는 외부로 향하는 창문 역할을 한다. 단순히 패널을 사다가 조립하는 제품이 아니다. 패널 뒤 인쇄회로기판(PCB) 위에는 수많은 전자부품이 부착돼 있다. 이들 부품이 기계의 두뇌에 해당하는 마더 보드로부터 신호를 받아 모니터에 띄우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일반적인 품질검사는 물론 가혹조건실험 등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검증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둘째,25년 동안 산업용 모니터 한우물을 파면서 다양한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산업용 모니터는 의료용 군사용 항공관제용 교육용 등 다양하다. 일반 컴퓨터용 모니터와는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다. 모니터별로 사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료용 모니터의 경우 미세한 점을 놓고 암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만약 모니터의 해상도가 떨어지면 생명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회장은 "산업용 모니터의 경우 종류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반 컴퓨터용 모니터와 비교할 때 해상도나 제품 신뢰성 측면에서 서너 배 이상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모니터를 대량으로 만들면 창업 몇 년 만에라도 매출을 대폭 늘릴 수 있지만 산업용 모니터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대기업이 쉽게 뛰어들 수도 없는 분야다. 그는 "일반 모니터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회사는 전체 직원의 25%를 연구개발 부서에 배치해 놓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용 모니터,항공관제용 모니터,교육용 모니터인 전자칠판 등을 속속 개발했다. 매출이 점차 늘면서 전체 매출에서 카지노용 모니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점차 줄고 있다. 한때 75%를 차지하던 비중이 지난해 60%로 낮아졌고 올해는 50%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대신 의료용 모니터와 멀티 디스플레이 · 전자칠판 · 항공관제용 모니터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중 의료용 모니터에는 초음파진단용과 내시경용 수출용 모니터도 들어 있다. 대형 광고용 모니터는 최대 82인치급도 출시하고 있다.

셋째,글로벌 경영이다. 코텍은 미국 오하이오 뉴저지 등에 사무소나 서비스센터를 두고 있다. 남미 브라질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 시드니 등에도 사무소나 서비스센터를 구축해 놓고 있다. 이 회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제품의 90%가량을 수출한다. 또 분야별 선발업체와 제휴해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납품한다.

이 회사는 다양한 기술 개발과 제품 생산에 나선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당시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고 2009년 인천시로부터 인천시IT기술대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코스닥히든챔피언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회사의 비전은 무엇일까. 이 회장은 "기존 사업의 확대 발전을 통해 기반을 강화하고 동시에 신사업 추진을 통해 사업포트폴리오 구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업은 의료용,특수 전자칠판과 멀티터치 테이블,항공관제 모니터와 더불어 선박용,군사용,항공용 모니터 등으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 회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용 모니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