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다. 소비자 물가가 정부의 관리 목표선인 3%를 넘었고 생산자 물가는 더욱 가파른 상승세다. 문제는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이 국내 수요 압력보다는 인위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유발적이고 불가항력적인 비용 상승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아 개도국들의 수요 증가,넘치는 국제 유동성,중동의 정치정세 불안 등으로 원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올라가고,국내적으로는 이상한파와 구제역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물가 대책들은 모두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주요한 물가 안정 대책인 금리 정책이 진퇴양난의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물가를 잡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야단이지만,내수 경기 둔화와 늘어나는 가계부채 그리고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세난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일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일이 된다. 자칫하면 물가는 잡지 못하고 경제 불안만 가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핵심 물가 억제 대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정부는 할 수 없이 개별 품목들에 대한 가격 인하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까지 나서 독과점 가격 등을 내리도록 종용하고,국내 통신 요금과 석유가격의 초과 이득을 낮추도록 하면 아무래도 물가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본다.

아쉽게도 이 역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데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는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지나친 간섭,튀어오르는 가격마다 따라잡는 '두더지 잡기'식 물가 대책이라는 원망과 비아냥이 쏟아지는 것이다.

사실 물가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억지로 막아 보았자 오래 갈 수 없는 것임은 그동안 수많은 경험에서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이번 정부 초반에도 물가를 잡는다고 'MB물가지수'까지 구성하는 수고를 했지만 결국 원자재와 농수산물 가격이 자연스레 내려가면서 물가가 안정됐었다.

외부적 비용 인상에 의한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물가 안정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거시 정책 차원에서는 내수 경기가 불안한 상황이므로 금리보다는 환율을 통해 물가 안정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내 수출 부문이 최대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환율의 추가적인 하락을 용인함으로써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로 국제 원자재와 농축수산물의 원활한 수급 조정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원자재와 곡물 등의 자원 선물 시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농축수산물의 해외 수입과 비축 제도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일부 품목만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기보다는 국내 경제 전반의 비합리적인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는 이른바 전 품목의 '통큰 치킨'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마 전 대형 유통업체가 추진한 이 방안은 추가적인 물품 구매를 겨냥한 이기적인 영업 전략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가격 인하를 위한 기업 혁신 전략의 좋은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유통과 물류 체계의 합리적인 개선과 획기적인 비용 절감 방안 등을 개발해 제품 가격을 내리는 기업들에는 그만큼의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유인책을 마련한다면 자연스럽게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유병규 < 현대경제硏 경제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