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기기와 원전 플랜트 전문기업인 일진에너지(대표 이상배)가 태양전지 핵심 기자재인 잉곳(Ingot) 생산설비 분야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간 500대 규모의 '그로잉 머신'(단결정 성장장치) 생산능력을 최근 갖췄다고 21일 밝혔다. 그로잉 머신은 단결정 실리콘 원기둥인 잉곳을 만드는 장비다.

그로잉 머신 세계 1위 생산업체는 일본 웨이퍼 업체인 페로텍으로 중국에서 연간 800여대를 생산하고 있다. 일진에너지는 페로텍이 생산하는 6인치보다 2인치가 큰 직경 8인치(200㎜)의 그로잉 머신 대량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8인치 그로잉 설비는 6인치보다 1억~1억5000만원 더 비싼 값에 공급된다. 일진에너지는 지난해 5개월 동안 30여명의 전문인력이 투입돼 그로잉 설비를 250여대나 생산했다. 이 설비는 국내 태양광 전문업체인 세미머티리얼즈를 통해 중국으로 전량 수출됐다.

실리콘을 고온에서 녹인 후 둥근 기둥 형태의 잉곳을 생성하는 열처리로인 그로잉 머신 기술의 핵심은 초진공 상태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최고 1500도 고온과 고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물론 설비 표면에 머리카락 크기의 미세한 흠집도 일절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측은 "이런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데도 하루 1.7대꼴로 그로잉 머신을 제조했다"며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2008년 CVD 리액터를 시작으로 태양광 발전설비 후발주자로 뛰어든 일진에너지가 이처럼 단기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데는 1990년 창업 이래 고온 고압 고진공 등 극한 환경을 견뎌내야 하는 원자로 핵심 기계장치의 설계 및 제작에 폭넓은 경험과 기술력을 쌓아온 덕분이다.

이 회사는 작년 12월 신형 경수로 3세대 원전(APR 1400)의 토대가 되는 아틀라스(ATLAS)를 직접 제작했다. 아틀라스는 실제 원자로를 144분의 1로 축소 제작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장치'로 3세대 원전이 8.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고 기존 2세대 원전보다 기능이 10배나 강화됐다는 것을 가상 실험을 통해 입증함으로써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의 최대 효자가 됐다.

1400여개의 초정밀 부품이 들어가는 그로잉 머신도 바로 이 같은 원전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도 세미머티리얼즈에 400여대의 그로잉 머신을 공급한다. 이 부문 매출만 올해 목표 매출액 1700억원의 28%에 해당하는 6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08년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화공기기 부문 매출이 과열 저가 수주경쟁으로 인해 올해 절반인 250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태양광 부문에서 성장기반을 다지게 됐다.

이상배 대표는 "중장기적으로 페로텍을 능가하는 세계적 그로잉 머신 전문제조업체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