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게놈 지도' 분석해 약물ㆍ식사 등 맞춤 치료…100세까지 질병 없이 건강하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성진 차움 차암연구소장
고유 염기서열 SNP 연구하면 개인별 최적의 치료제 예측 가능
질병은 유전자가 결정하지만 환경ㆍ생활습관에 따라 달라져
"후천적 유전체 변화까지 예방하면 무병장수도 불가능한 일 아니다"
고유 염기서열 SNP 연구하면 개인별 최적의 치료제 예측 가능
질병은 유전자가 결정하지만 환경ㆍ생활습관에 따라 달라져
"후천적 유전체 변화까지 예방하면 무병장수도 불가능한 일 아니다"
"현재 한 사람의 유전체 전부를 해독하는데 2주, 2500만원이 들지만 5년 후에는 600만~10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갈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별로 걸리기 쉬운 위험질환과 그에 가장 잘 맞는 치료제를 골라서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2008년 한국인 최초로 개인 유전체 지도를 공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차병원그룹 안티에이징센터 '차움'의 김성진 차암연구소장은 "개인의 유전체 지도를 해독해 맞춤치료하는 시대가 수년 안으로 찾아올 것"이라며 "유전체 해석 결과에 맞춰 건강관리를 한다"고 소개했다.
김 소장이 4개월 동안 2억8000여만원을 들여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그는 노인성황반변성의 확률이 정상인에 비해 8.2배 높았다. 그는 심할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어 인공눈물과 안약을 가지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눈에 넣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 도중 짬짬이 휴식을 취한다. 컴퓨터와 TV도 즉각 브라운관에서 LED로 바꿨다. 조금만 더 먹어도 당뇨병과 비만 성향이 높은 체질이라 소식하려 애쓰고 항산화제 복용과 운동으로 건강을 챙긴다.
유전체 염기서열분석(DNA sequencing)과 해독(reading)은 높은 비용,비용 대비 유효성 부족,보건당국의 규제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허가한 유전자 검사는 45개 질환,200여개 관련 유전자로 국한돼 있다. 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검사라도 한국인에게 유효한 검사법임을 입증해야 비로소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 유료로 상용화된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차움에선 올해부터 5년간의 일정으로 한국인 1000명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김 소장은 현재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과 독일 러시아 중동지역에 유독 많은 위암과 관련,유전자의 상관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상인 13명의 유전체 전부,암 환자 7명의 유전체 전부,암환자의 정상세포 45개와 암조직 5개 등 총 80개의 샘플을 대상으로 연구해 최근 200여개의 관련 유전자를 찾아냈다. 바이오인포매틱 전문가인 테라젠이텍스의 박종화 바이오연구소장이 이 중 위암 진단의 정확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유전자를 추려내고 있고 이르면 2년 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간의 게놈지도에는 30억개의 염기 서열이 그려져 있다. 3개의 염기서열이 아미노산의 종류를 결정하고,여러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해 다양한 단백질을 만든다. 인체활동은 생체단백질에 의해 이뤄지므로 결국 유전자(의미있는 염기서열의 집합체)의 차이가 개체 간 특성과 건강을 좌우하는 열쇠다.
2001년 휴먼게놈프로젝트 초안이 완성되면서 인류는 유전자 조절을 통해 금세 난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처럼 들떴다. 당시 과학자들은 무려 100조개에 달하는 인간의 세포를 불과 3만여종의 유전자로 조절하는 데 놀랐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99.9%나 동일하고 같은 사람끼리도 불과 수십개의 유전자 차이에 그친다는 데 또다시 경탄했다. 당초 과학자들은 기능성 생체단백질은 전체 염기서열의 1%에 불과한 유전자가 만든 것이고 나머지 유전자 사이에 놓인 99%의 염기서열은 무의미한 잡(雜)정보를 담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99%에도 인류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질병의 발병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측되면서 실의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담배를 많이 피워도 폐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할 수 있는 보통사람보다 월등한 흡연 해독 유전자나,많이 먹어도 대사능력이 뛰어나 좀체 살이 찌지 않는 유전자 등은 99%안에 담겨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1000~1250개 염기 중 1개꼴로 다른 사람과 다른 염기서열,즉 단일유전자변이(SNP)를 갖고 있다. 이것이 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보인다. 김 소장은 "개인별로 300만개 안팎의 SNP를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한국인은 중국인 및 서구인과 다른 180만여개의 고유 SNP를 갖고 있고 같은 아시아인인 중국인과 공통되는 것은 30만개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SNP를 분석하면 약물반응(감수성) 예측에 유용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감기에 어떤 해열 · 소염 · 진통제를 써야 가장 효과적이고,암 환자가 신종 표적항암제를 쓸 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파악하며,와파린이나 클로피도그렐 같은 혈액응고억제제를 쓸 때 얼마만큼 투여해야 대량출혈의 부작용을 방지하면서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예견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SNP에 담겨진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질병을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다. 더욱이 일루미나,라이프테크놀로지,로슈 등이 초고속 저비용으로 전체 유전자게놈을 분석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날이 머지 않았기에 SNP보다는 게놈 전체를 분석하는 게 훨씬 이점이 많다는 것이다.
질병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어떤 환경에서,무슨 음식을 먹으며,어떤 생활습관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건강을 유지할 수도 있고 질병에 시달릴 수도 있다. 김 소장은 "암의 80%가량이 유전자는 정상인데도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생활습관,음식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연구하는 게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명의 설계도인 DNA와 생명활동 및 인간의 특성을 담은 의미 있는 DNA의 집합체인 유전자가 환경과 습관에 변화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타고난 DNA가 바뀌는 경우는 드물지만 DNA의 일부가 메틸기(基)로 마스킹(기능차단)되는 등 변화가 나타나면 유전체 기능이 변화되면서 질병이 유발될 수 있다. 때로는 당대에 획득된 이런 후성유전이 후세에 유전될 수도 있다.
김 소장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사전에 취약한 포인트에 대한 건강관리를 하고 환경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악화되는 유전체의 기능적 변화까지 예방한다면 100세까지 질병없이 사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스쿠바대에서 응용생화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국립보건원 암연구소 종신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해오면서 암세포 유전자의 신호전달,암 발생에 관여하는 표지자 등에 대한 20여편의 영향력 있는 국제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아왔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