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흥행 영화 '부당거래'와 화제작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훈정 작가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혈투'로 감독에 데뷔한다. 현재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SBS '싸인'의 대본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장항준 씨가 썼다. 장씨는 영화 '북경반점''귀신이 산다'의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해 '라이터를 켜라'의 감독을 맡았다가 방송작가로 변신했다.

역량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의 '영화 엑소더스(탈출)'가 일어나고 있다. 처우가 좋은 감독으로 데뷔하거나 방송 드라마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 투자사 심사역은 "쓸만한 시나리오 작가들이 자리를 옮기면서 2년 전부터 괜찮은 시나리오가 사라졌다"며 "트렌드를 반영해 급조한 기획영화 시나리오들만 생산되고 다양성이 없어졌다"고 우려했다.

인기 시나리오 작가였다가 영화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케이스는 많다. 스릴러 '세븐 데이즈' 각본으로 유명한 윤재구 작가는 스릴러 '시크릿'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반칙왕''정사'의 김대우 작가는 '음란서생'과 '방자전'을 연출했다.

2009년 흥행작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는 지난해 방송 드라마 '추노'와 '도망자' 등을 집필해 히트시켰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는 드라마 '선덕여왕','여고괴담4'의 설준석 작가는 드라마 '불량주부'를 썼다.

이들이 '시나리오 작가'의 꼬리표를 떼는 이유는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데뷔 작가의 시나리오는 편당 약 3000만원 선.중견 작가는 편당 5000만원 안팎이며 A급 작가의 고료는 8000만~1억원이다. 모두 영화가 완성된 후 완불받는 조건이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은 "영화제작사는 처음에 500만~1000만원을 주거나 심지어는 진행비라는 명목으로 매달 몇 십만원 정도를 주면서 일을 시킨다"며 "시나리오 개발 기간은 계약서에 정확히 명시돼 있지 않아 그 돈으로 6개월 혹은 1년 이상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데뷔 감독의 연출료는 평균 5000만원 선.흥행성을 인정받으면 1억~3억원 수준으로 뛴다. 봉준호 · 김용화 등 A급 감독들은 연출료 외에 흥행수익의 10% 이상을 보너스로 받는다. 이에 따라 '괴물'과 '국가대표'로 10억~20억원을 챙겼다.

흥행 감독들은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투자배급사와 직접 계약하기도 한다. 쇼박스는 현재 촬영 중인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고지전'의 장훈 감독 등과 10억원씩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각 '타짜'와 '의형제'를 히트시킨 감독들이다.

방송 드라마 작가의 데뷔 시절 고료는 편당 500만원.20부작이면 1억원에 달한다. 히트작을 내면 편당 2000만원씩 받기도 한다. 천성일 작가는 영화 '7급 공무원'의 각본료로 5000만원 정도를 받았지만 KBS 드라마 '도망자'에서는 편당 2000만원씩,총 4억원(20부작)으로 고료가 치솟았다.

영화계 관계자는 "A급의 경우 한 사람당 4억~5억원에 이르는 배우들의 출연료를 줄여서라도 각본료를 올려줘야 한다"며 "스토리 작가가 사라지면 영화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