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처능력 불신이 괴담 확산 원인
"국민 불안감 살피는 공감의 정치 펴야"

소.돼지 전염병인 구제역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인터넷 등 사이버공간에서 관련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에 이어 구제역 가축 매몰지의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괴소문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관리능력 부재가 이런 불신의 일차적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적극적인 해결 노력과 투명한 정보 공개로 국민의 불안을 달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사이버공간을 단순히 불신감을 표출하는 창구보다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는 사회적 공론장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누리꾼들 "정부 못 믿겠다"

소셜미디어인 트위터에서는 21일 "(경기도) 김포의 한 회사에서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돼지 핏물이 나왔다"는 글이 떠돌았다.

지난 18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한 카페에 올라왔던 글과 사진이 트위터로 옮아간 것이다.

이 회사는 구제역 매몰지와 직선거리로 1.4㎞ 떨어진 곳에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경기도를 통해 곧장 실태 파악에 나섰다.

김포시 부시장이 직접 현장조사를 한 결과 겨우내 얼었던 상수도와 지하수 수도꼭지를 뜨거운 물로 녹이는 과정에서 녹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침출수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헛소문으로 번졌던 것이다.

환경부는 트위터를 통해 "김포시 부시장이 찾아가 확인해보니, 얼었던 수도꼭지가 녹으면서 나온 녹물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깨끗한 물이 나온답니다"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김포시는 추가로 수돗물에 대해 검사를 하기로 하고 시료를 채취해간 상태다.

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같은 날 7개 시.군 15개 구제역 매몰지에서 침출수 18점과 토양 12점의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구제역 바이러스나 탄저균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구제역에 감염됐거나 감염 우려가 있어 묻은 가축 매몰지가 부실하게 조성돼 여기서 침출수가 유출되면 환경오염, 질병 확산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가 과학적 조사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속보로 올라온 이 기사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누리꾼은 "난 이 정권에서 하는 말은 하나도 못 믿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탄저균이 검출되어도 검출됐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는 안 할 거 같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은 "없다면 다행이다만...있어도 니덜이 있다고 할 넘들이가? 웃음만 나온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돌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구제역 매몰지에 탄저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속보가 뜨는군. 없을 수가 있는 걸까?...(중략)...뉴스도 이젠 못 믿겠다"는 글을 올렸다.

정부나 언론에 대한 단순한 불신감을 넘어 미신에 가까운 주장을 내놓는 누리꾼들도 있다.

한 누리꾼은 "조선시대 예언들이 생각나네요.

남대문이 불타면 국운이 다한 것이니 한양에서 되도록 멀리 도망가라는 예언하고..돌림병이 돌아 시체가 쌓이니 세 집 건너 한 집만 살아남는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괴담에 가까운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구제역이 창궐하던 시기에도 떠돌았다.

대표적인 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정부가 고의로 구제역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에는 '대통령이 러시아를 다녀온 후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이 미국을 위해 옮겨온 것 같다'거나 '미국 소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구제역의 진원지를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 "정부, 슬기로움 발휘해야"

전문가들은 불신과 유언비어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꼽았다.

따라서 정부 스스로 철저한 사태 해결과 신뢰 회복에 진력하고, 누리꾼들도 합리적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구조적으로 있었던 우리 사회의 정부에 대한 저(低)신뢰에 현 정부에 대한 저신뢰가 설상가상으로 겹쳐 이런 불신과 유언비어를 낳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이번처럼 피해 규모가 막대한 구제역 사태나 졸속 매몰의 부작용은 전무후무한 일이므로 구제역과 바이러스, 환경 등 관련분야 전문가 공동체를 구성해 대처하고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도닥거려줄 수 있는 공감(共感)의 정치를 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구정에 고향이 안동이라 내려갔었는데 농민들이 그때부터 '정부로선 농민, 축산업자 다 죽이고 미국산 들여오기 좋게 됐으니 잘된 거 아니냐'는 얘길 하더라"며 "불필요한 오해를 증폭시키는 진원지도 결국 정부"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국민들은 환경과 건강이라는 일상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데 정부는 관리능력이 없다는 걸 드러냈다"며 "괴담 유포를 자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심각성을 알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런 상황일수록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는 일이 공론의 장에서 중요한 흐름이 돼야 한다"며 "괴담 수준으로 공론장이 전락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로서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세력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정부도 더 분발해 이런 재앙이 재발하지 않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는 데 슬기로움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