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입시제도 제발 그만 좀 흔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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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바뀌고 전형도 너무 복잡…졸속행정 수험생·학부모만 '골탕'
조선 선조 때 일이다. 군 총책인 도체찰사를 맡고 있던 유성룡(柳成龍)이 하루는 역리를 시켜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사흘 후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고 회수토록 명령하자 공문이 곧바로 되돌아왔다. 유성룡이 화가 나 "왜 공문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꾸짖자 역리는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있듯 사흘 후면 다시 고칠 것 같아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전하는 내용이다.
나라의 정책이나 고위 관리들의 지시가 얼마나 조변석개(朝變夕改)였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지,하위 관리들과 백성들은 얼마나 큰 불편과 혼란을 겪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게 꼭 옛날 일만은 아니다. 교육계에서는 지금도 한 해가 멀다하고 냉탕 온탕 정책이 되풀이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올 대입수능은 EBS교재와의 체감 연계율을 높여 영역마다 만점자가 1%씩 나오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점자가 언어영역은 작년보다 17배,외국어는 5배,수리 '가'는 50배에 달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시험이 어려웠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다시 쉽게 내겠다고 돌아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교 내신 성적에 대한 평가 방식은 상대평가에서 다시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한다.
비상이 걸린 것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다. 지난해 시험 내용이나 결과가 입시 준비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시험이 변별력을 갖기 힘들 게 불 보듯 뻔한 까닭이다. 자칫하면 한두 문제만 틀려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우수 학생을 뽑을 방안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썩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고차방정식처럼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수시 전형만 해도 학생부우수자 · 논술우수자 · 글로벌리더 · 입학사정관제 등 종류가 너무 다양해 도대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준비해야 할지 애를 먹는다.
주요 사립대의 경우 이런 수시전형의 종류가 학교당 10여개에 이른다. 관심 있는 대학 몇 군데만 살펴도 수십 가지 전형을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수시 선발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이어서 수험생들은 적게는 3~4곳, 많게는 10여곳에 마구잡이식으로 원서를 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시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학마다 채용 과목과 점수 반영비율이 다르고, 내신 점수 반영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추가 합격을 의식해 합격자 중 어느 정도가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인지까지 예측하며 원서를 내야 한다. 더구나 수시 선발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정시의 문을 통과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이번 정시만 해도 선발 인원이 너무 줄어 전국 석차 0.5%이내에 들고도 재수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 숱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과 입시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매달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판이다. 비용을 댈 능력이 없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지나치게 복잡한 입시제도가 진정한 의미의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이야기다.
입시 제도는 될수록 단순해야 하고 또한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쉽게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장기적 전략을 세워 차분히 준비할 수 있다. 제도를 자주 바꾸는 게 결코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연례행사처럼 냉탕 온탕을 반복하고 조변석개하는 모습은 제발 그만 봤으면 싶다. 일관성을 유지해 나갈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입시 만큼은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게 더 낫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나라의 정책이나 고위 관리들의 지시가 얼마나 조변석개(朝變夕改)였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지,하위 관리들과 백성들은 얼마나 큰 불편과 혼란을 겪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게 꼭 옛날 일만은 아니다. 교육계에서는 지금도 한 해가 멀다하고 냉탕 온탕 정책이 되풀이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올 대입수능은 EBS교재와의 체감 연계율을 높여 영역마다 만점자가 1%씩 나오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점자가 언어영역은 작년보다 17배,외국어는 5배,수리 '가'는 50배에 달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시험이 어려웠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다시 쉽게 내겠다고 돌아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교 내신 성적에 대한 평가 방식은 상대평가에서 다시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한다.
비상이 걸린 것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다. 지난해 시험 내용이나 결과가 입시 준비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시험이 변별력을 갖기 힘들 게 불 보듯 뻔한 까닭이다. 자칫하면 한두 문제만 틀려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우수 학생을 뽑을 방안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썩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고차방정식처럼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수시 전형만 해도 학생부우수자 · 논술우수자 · 글로벌리더 · 입학사정관제 등 종류가 너무 다양해 도대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준비해야 할지 애를 먹는다.
주요 사립대의 경우 이런 수시전형의 종류가 학교당 10여개에 이른다. 관심 있는 대학 몇 군데만 살펴도 수십 가지 전형을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수시 선발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이어서 수험생들은 적게는 3~4곳, 많게는 10여곳에 마구잡이식으로 원서를 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시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학마다 채용 과목과 점수 반영비율이 다르고, 내신 점수 반영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추가 합격을 의식해 합격자 중 어느 정도가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인지까지 예측하며 원서를 내야 한다. 더구나 수시 선발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정시의 문을 통과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이번 정시만 해도 선발 인원이 너무 줄어 전국 석차 0.5%이내에 들고도 재수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 숱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과 입시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매달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판이다. 비용을 댈 능력이 없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지나치게 복잡한 입시제도가 진정한 의미의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이야기다.
입시 제도는 될수록 단순해야 하고 또한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쉽게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장기적 전략을 세워 차분히 준비할 수 있다. 제도를 자주 바꾸는 게 결코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연례행사처럼 냉탕 온탕을 반복하고 조변석개하는 모습은 제발 그만 봤으면 싶다. 일관성을 유지해 나갈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입시 만큼은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게 더 낫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