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P(휴렛팩커드)가 PC 판매 부진 등의 여파로 좋지 않은 실적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업황 반등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최근 인텔의 2세대 코어 시리즈 '샌디 브릿지' 프로세서가 설계 오류로 리콜에 들어간 점도 이 같은 우려를 키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음달부터는 반도체 업황 반등 기미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HP는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2011회계연도 1분기 실적을 내놨다. 매출은 323억달러로 전년 동기 312억달러보다 4% 증가했으나 전문가들의 사전 예상치 329억달러를 하회했다. 2분기 실적 전망도 예상보다 부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HP는 2분기 매출 316억달러, 주당 순이익 1.21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이는 블룸버그 조사치 평균인 매출 326억달러, 1.26달러를 하회하는 수치다.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HP가 삼성전자의 주요고객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소식"이라며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예상보다 D램 메모리 가격이 빨리 상승하지 않을 수 있어 반도체 업황 반등 전망의 수정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정원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도 "전반적인 PC수요가 부진하고 당초 수요개선에 힘을 실을 것으로 기대됐던 인텔 샌디브릿지도 제품에 결함이 발생, D램 메모리 수요 반등이 1∼2개월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PC 수요 부진보다 모바일 기기 시장 확대와 D램 메모리 공급 과잉 우려 해소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바일 D램 메모리 독점구조 조성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급부족 등으로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실적 호조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HP의 경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매출비중이 38%에 달해 소비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미국을 주력으로 삼은 델과는 다른 지역기반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다음달께는 반도체 업황이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올 4월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혼용 생산하고 있는 경기 화성 반도체공장 12라인에서 낸드플래시만 생산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다른 회사들도 이같은 추세에 합류, 반도체업체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이번 계획으로 글로벌 D램 생산 규모가 1% 축소되거나 혹은 PC 출하량이 2%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생산구성 전환은 신 모바일 기기 수요에 따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기회 요인이 중요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는 "D램 메모리 현물가격은 평균적으로 고정가격과 20∼25% 수준의 가격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물가격과 고정가격의 갭 메우기가 진행되면서 고정거래 가격이 3월부터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