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진출 한국 건설업체들이 '철수냐,현장 고수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플랜트 등 사업장 규모가 크고 추가 수주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대형사들은 현장 고수에,시내에 가까운 주택건설 현장을 갖고 있는 중견사들은 철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철수 방침을 세운 업체들도 미수금 발생 등 어려움이 뒤따를 전망이어서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강신형 해외건설협회 지역2실장은 "인력의 안전한 대피가 가장 중요한 과제지만 공사대금을 다 받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면 미수금 발생은 물론 시설 파손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리비아 진출 업체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해외 공사는 선수금을 받은 뒤 월 단위로 공사 진척도를 따져 공사비를 청구해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정률에 따라 일정 비율이 달성될 때마다 공사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청구한 이후 1~2개월 뒤에 공사대금을 받는 까닭에 철수를 결정하면 그만큼의 미수금이 발생하고 회수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1991년 걸프전 때 H건설이 외국 건설업체 중 가장 늦게 철수했지만 결국 11억달러 규모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전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번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해당 국가나 발주처에서 다른 공사도 추가 수주할 가능성이 커진다. 건설업계에선 2003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군대에 미군이 폭격할 때 SK건설이 현장을 지켜 이후 대형 플랜트 공사를 여러 건 따낸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공사 현장 철수는 추가 수주 확률을 낮추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토해양부 중동대책반은 "한국 대형 건설사들이 인력을 대피시킨 리비아 내 캠프는 각종 플랜트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현장이어서 안전 문제는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10명 안팎의 소수 인력을 투입한 중소 건설사들은 안전한 피신처가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육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라크 동북부 토부룩에 진출한 공간GTS의 근로자 9명은 승용차 편으로 200㎞를 넘게 달려 이집트 국경을 넘어 이 같은 분위기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