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가 본격적인 부족 간 내전에 돌입했다. "(알자지라TV)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2일(현지시간) 재차 퇴진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리비아가 본격적인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반정부 시위대와 반(反)카다피 부족 세력들은 제2의 도시 벵가지를 비롯한 동부 지역을 대부분 장악했다.

이에 맞서 정부 보안군은 북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전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학살하고 있다. 카다피 독재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가 리비아 동부와 북부 세력이 맞붙는 피를 부르는 내전으로 확대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또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번 사태로 1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하는 등 인명피해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결사항전 선언한 카다피

카다피는 이날 75분 동안 진행한 연설에서 광기에 찬 어투로 "나는 혁명의 지도자"라며 "리비아에서 순교자로 죽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시위대와 일전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카다피 연설 직후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수백명의 친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와 국기를 흔들며 "우리는 (카다피의) 길을 따를 것"이라고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카다피의 의전장으로 활동하다 지난 21일 사임한 누리 알 미스마리도 이날 "카다피는 리비아를 떠나지도 퇴진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시위대와 끝까지 혈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강경진압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아랍 위성TV 알자지라는 "전날에 이어 22일 밤에도 전투기가 시내 곳곳을 폭격하고 군용 헬리콥터가 시가지를 향해 발포했다"고 전했다. 리비아 내무부는 이날 반정부 시위 사태로 지금까지 189명의 민간인과 111명의 군인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동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시위대의 저항도 거세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현지인들의 발언을 인용,"벵가지와 동부 해안도시인 토브룩을 비롯한 동부의 모든 지역이 이제 카다피의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전했다.

◆카다피 지지 부족 이탈 가속

알자지라TV는 리비아 동부 지역은 시위대가 거의 장악했지만 북부 해안 지역은 여전히 카다피 통치하에 있다고 지적했다. 리비아 동부 지역에 반카다피 성향의 부족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500여개 부족으로 구성된 리비아에선 와르팔라,카다파,알주와이야 등 3개 부족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중 리비아 최대 부족으로 전체 인구의 15%가 넘는 와르팔라족은 이미 반카다피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동부 유전지대가 거점인 알주와이야족도 시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카다파족은 카다피가 족장이다. 카다파족에 이어 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큰 마가리하족 역시 친(親)카다피 성향이다. 이들은 카다피의 42년 통치 기간에 정부와 군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면서 성장했다. 이들 부족은 대부분 북부 해안 지역에 살고 있다.

알자지라TV는 "장기독재에 반발하며 일어난 이번 시위가 지역 간 부족들끼리의 전쟁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카다피 둘째 아들인 사이프 알 이슬람이 지난 21일 "시위가 확산되면 내전이 우려된다"고 경고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로이터통신은 마가리하족의 행보가 카다피의 운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가리하족은 이번 반정부 시위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친카다피 성향이었던 마가리하족까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릴 경우 대세는 급격히 시위대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다피 명령듣는 군인 급감

정부 인사와 군부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카다피에겐 고민거리다. 앞서 법무장관의 사임에 이어 압델 파타흐 유네스 내무장관은 이날 "카다피에게 크게 실망했다"며 "국민들의 적법한 요구에 응하기 위해 혁명에 합류한다"고 선언했다.

군부의 이탈도 빨라지고 있다. 동부 지역에선 이미 상당수의 군인들이 시위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총 4만5000여명의 정부 보안군 중 단 5000여명만이 카다피 지지세력이라고 전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