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사사로운 편지를 엿보는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안겨 준다. 특히 문인들의 편지는 다듬고 정제해서 내놓는 작품과 달리 작가의 숨결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문학평론가 강인숙 씨(영인문학관장)가 이광수 김동인 박두진 박완서 조정래 노천명 백남준 등 문인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에 해설을 붙인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을 펴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등이 한국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도 소개했다.

연인이나 가족,문우(文友)에게 보낸 편지 등 대상과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예술가들의 미묘한 내면세계와,그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과의 교감,당시의 시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춘원 이광수는 훗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된 허영숙과 재혼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른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늘 140원 부친 것 받았을 줄 믿소' '여름옷에는 렌코트(레인코트) 같은 것이 있어야 하겠으니 모두 값을 적어 보내시오'라고 썼다. 당시 학교와 잡지 일로 매달 150원가량을 벌었던 그가 아내의 학비는 물론 옷까지 살뜰히 챙긴 남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김광균이 며느리 민성기 씨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선 압축미와 푸근함이 느껴진다

휘갈기듯 적어 내려간 바람둥이 문인 남편의 쪽지,아연판에 새긴 조각가의 편지,친구의 회갑을 축하하는 그림엽서 등 육필 원본의 사진들도 흥미롭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