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무도 우즈를 겁내지 않는다. '

타이거 우즈는 그동안 PGA투어 소속 선수들조차 경외심을 갖고 대했던 선수였다. 마지막 날 그가 선두권에 포진하면 선수들은 '우승하기 힘들겠다'며 자포자기에 빠지곤 했다. 그가 잘 치면 투어에 기업들의 후원이 몰려들고 상금이 올라가는 것으로 동료들은 만족했다. 우즈와 같은 조로 편성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우즈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보다 못한 선수로 보기 시작했다. 우즈는 '골프 황제'가 아닌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

우즈는 2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마리나의 리츠칼튼 골프장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액센츄어 매치플레이 대회 1라운드 64강전에서 토마스 비욘(덴마크)에게 연장 19번째 홀에서 패했다. 연장전에 가면 11승1패로 90% 이상의 승률을 보이던 우즈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즈는 이날 연장 첫 홀(파4)에서 티샷을 오른쪽 덤불 숲속으로 날려버린 뒤 3타 만에 볼을 페어웨이로 꺼냈고 '4온'을 한 뒤 보기퍼트마저 홀을 외면해 고개를 숙였다.

우즈는 2주 전 두바이데저트클래식에서 3라운드까지 공동 4위에 올라 역전 우승을 바라보았으나 최종일 3오버파 75타라는 성적표를 제출하며 공동 20위에 그쳤다. 그의 마스코트처럼 된 '최종일 붉은 티셔츠'는 빛이 더욱 바래보였다.

우즈의 슬럼프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연상시킨다. 우즈의 성공만을 지켜본 팬들은 그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모른다. 우즈는 흑인이다. 혹독한 인종 차별을 감수하며 자랐다. 피플지 칼럼니스트 스티브 해링이 쓴 책 '타이거(Tiger)'에 따르면 우즈는 정서적 및 신분적인 불안과 반복되는 인격 침해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군인 출신인 우즈의 아버지 얼은 1974년 군 복무를 마치고 두 번째 부인 쿨티다와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에 정착했다. 그러나 이사 오자마자 부엌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오는 돌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우즈는 5세 때 유치원에 처음 등교하던 날 잊을 수 없는 사건을 접했다. 6학년생들이 우즈를 나무에 묶은 뒤 스프레이로 '깜둥이'라고 쓰고 돌을 던졌다. 이 사건은 우즈에게 지금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아 있다.

1학년이 된 우즈는 '말더듬이'가 됐다. 피곤하거나 화가 나고 겁을 먹으면 증상이 심해졌다. 수차례 언어 치료도 받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게다가 근시 때문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다녔다. 말할 때는 아래를 보는 습관으로 학교생활 내내 '왕따'에 준하는 외면을 당했다. 한 친구는 "우즈가 유명해졌을 때 그에 대해 기억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골프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협박 편지와 위협에 시달려 경호팀을 고용해야 했다. 1997년 첫 우승컵을 안았을 때는 퍼지 졸러라는 선수로부터 "내년 챔피언스디너 메뉴에는 치킨과 콘라드(흑인들이 즐겨먹는 배추의 일종) 등이 차지하겠구만"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는 불륜 스캔들 이후 1년이 넘도록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듯이 그가 다시 재기에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한국(계) 선수 5명 중에서는 양용은과 최경주가 승리,2라운드에 진출했다. 김경태,노승열,앤서니 김은 탈락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