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10년 뒤를 내다보고 바이오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해외 업체와 합작으로 다른 업체가 주문한 약을 생산하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신약 개발을 통해 세계적 제약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사와의 합작→기술 확보→독자 기술 개발→차별화된 제품 생산→시장 지배력 강화'라는 삼성전자의 성공 방정식을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재현하는 게 목표다.

◆바이오사업 성공의 방정식

삼성 바이오사업의 출발은 그다지 요란하지 않다. 파트너인 미국 퀸타일즈는 바이오업계에서는 꽤 유명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투자 규모도 3000억원 수준으로 비슷한 사업을 하는 국내의 셀트리온이 투자한 것보다 훨씬 작다. 사업은 특허 기간이 끝난 의약품을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아니라 다른 회사가 주문한 것을 그대로 생산해주는 의약품위탁생산(CMO)이다.

그러나 업계는 이 사업을 삼성이 한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한동안 세계의 변방에 있다가 글로벌 톱으로 등극한 삼성전자도 배후에 있다. 합작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의약품 생산 노하우를 획득한 후 독자 기술로 제품을 생산한다면 세계시장에도 충분히 먹히는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삼성은 현재 세계 최고의 제조기술력과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을 갖고 있다.

김태한 삼성 신사업팀 부사장도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바이오제약 사업은 인명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품질이 중요하고 R&D 역량을 많이 필요로 한다"며 "삼성은 이미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에서도 삼성이 제조기술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인 CMO를 시작으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MO 다음 단계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이다. 삼성은 이미 림프암과 관절염에 쓰이는 리툭산이라는 제품 개발에 들어가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이 약에 대한 독점적 특허가 끝나는 2016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내에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합작할 파트너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신약 개발사업 진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CMO,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향후 10년 내 신약사업에 진출해 세계적 제약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구상이다.

◆10년 만에 재가동된 프로젝트

삼성은 2000년대 초반에도 바이오사업 진출을 검토한 적이 있다. 당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바이오사업 진출을 검토했고 국내외에서 인력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는 "삼성이 바이오사업을 위해 박사급 인력 수백명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때 들어온 핵심 인력 중 한 사람이 현재 삼성그룹의 바이오사업을 이끌고 있는 고한승 신사업팀 전무다. 고 전무는 당시 미국 바이오업체인 다이액스(Dyax)에서 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가 영입됐다. 그러나 당시는 사업 다각화에 대한 반대 분위기 등으로 사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삼성의 이번 바이오사업 공식 진출은 10년 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제약업계의 해석이다.

이 회장의 뜻도 강력하다. 그는 최근 바이오사업에 대해 "바이오제약은 삼성그룹의 미래사업"이라고 못 박고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신년사에서 이 회장은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