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39)을 바라보는 그룹 내부와 외부의 시선은 상당히 다르다. 내부 직원들은 2005년부터 매달 한 번씩 과장~부장급 간부는 물론 말단 사원들과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의견을 주고받는 정 회장을 '소통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반면 외부에서 보는 그는 활발한 소통형 경영자는 아니다. 2003년 부회장 취임과 동시에 그룹 경영을 총괄해온 '9년차 최고경영자(CEO)'이지만 그동안 공식행사 이외의 외부 노출은 자제해온 탓이다.

그런 정 회장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내부 직원'으로 국한됐던 소통의 대상을 '고객'으로 한발짝 넓힌 것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정 회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고객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27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간 온 역량을 집중했던 '내실 다지기'를 통해 회사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 CEO이자 오너(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 37.4%)로서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고객을 만나는 주요 통로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그는 올초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전담팀' 설립을 지시하면서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펼칠 때 반드시 현대백화점 고객들을 초청하라.나도 함께 하면서 이들과 의견을 나누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백화점은 영업전략실 안에 CSR 전담팀을 새로 만들었다.

정 회장은 실제 올 1월3일 그룹 시무식을 마친 뒤 곧바로 서울 중계본동 백사마을을 방문,고객 및 임직원들과 연탄을 배달했다. 지난 10일에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 진행된 헌혈 캠페인 행사장을 찾아 자신의 피를 이웃에게 내준 고객들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씩 건넸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고객들에게 "죄송합니다. 1월 말 해외출장을 다녀온 탓에 정작 제 자신은 헌혈을 못합니다. 규정상 해외에 다녀온 사람은 귀국 후 한 달 동안 헌혈하면 안된답니다. 다음 기회에 반드시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3월에는 아이들 공부방 환경을 개선해주는 행사에 참석키로 하는 등 앞으로 매달 한 번꼴로 고객과 함께하는 사회봉사 활동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주요 그룹 3세 경영인 중 가장 빨리 부회장(2003년)과 회장(2007년)에 오른 탓에 자칫 '젊은 나이에 너무 나선다'는 이미지가 생길 것을 염려해 외부 활동을 자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CEO로 충분한 경력을 쌓은 데다 한국 나이로는 마흔이 된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