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은 국민의 의식구조와 기업의 행태를 바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려는 데 있다. 역사발전은 물론 경제발전은 국민의 의식구조와 행태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온 결과라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이익공유제'와 '동반성장지수' 평가제는 대기업의 행태를 친(親)중소기업으로 바꾸려는 게 목적이다. 중소기업계는 환영하지만 재계는 불만이다. 우선 대기업이 거둔 이익을 이익 발생에 기여한 중소협력기업에도 나누는 것이 옳고 가능한 것이며, 평가제도가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경영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대기업은 큰 돈을 벌지만 협력사는 어렵다는 게 동반성장위의 시각이고 제도 도입의 배경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계약서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주문을 뒤집고 납품대금을 후려쳐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중소기업계의 불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도입하는 제도가 현실과 거리가 멀거나 불리한 경우 제도에 순응하기보다 피해 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기업의 행태다. 이익공유제가 시행된다면 상당수 대기업은 부품업체를 직접 꾸려 수직계열화하거나 해외조달 방법을 강구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이 설 땅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의 이익 발생에 국내 협력중소기업은 물론 해외 부품공급업체도, 제품 소비자도 기여했을 것이고 기술개발, 원가절감, 마케팅 등 이익 창출에 기여한 요인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똑같은 부품을 납품받고도 큰 이익을 내거나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이익 발생 요인을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납품업체별 이익기여도를 산정하기는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납품업체가 기술개발과 공정개선으로 품질을 높이고 납품단가를 낮추는 경우 성과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돌려주는 성과공유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기업도 있다. 이익공유제에 매달리기보다 성과공유제를 정착,확산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옳은 방향이 아닐까. 성과를 공유하려면 대 · 중소기업의 협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지수 평가제도는 대기업이 협력업체들에 베푼 동반성장 이행실적을 정량(定量)으로 평가한 다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대해 느낀 체감도 평가(정성평가)를 합산해 56개 대기업별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평가항목의 구성과 점수배분도 문제지만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체감도를 점수화하는 건 더욱 문제다. 업종과 업태(業態)가 천차만별인 기업을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면 무리가 따른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기업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면 점수가 낮은 기업은 악덕기업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기업에 대한 평가는 시장의 몫인데.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책의지가 강한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목적이 좋다고 해서 수단의 정당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지속적인 동반성장이 가능하려면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거래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공정거래를 보장하는 건 당국의 몫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원가절감과 품질개선은 물론 기술개발에 매달려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경쟁력 없이 협력해서 동반성장하겠다는 건 동반퇴보로 이어진다. 중소기업은 스스로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거나 기술을 나누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오죽하면 반시장적이란 소리를 들으며 동반성장위가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 했을까. 대기업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