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핀(브로치) 외교의 대가였다. 유엔 주재 대사였던 1994년,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 같다'고 평하자 대뜸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이후 브로치로 외교적 메시지는 물론 자신의 속뜻까지 전달했다.

러시아 측이 미 국무부 회의실을 도청했다는 사실을 안 다음 러시아 관료를 만날 때면 벌레(bug · 도청이란 뜻도 있다) 브로치를 달고,중동 회담 땐 자전거 모양을 통해 끊임없는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에 올 때면 햇살 문양을 선택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깔끔한 단발 머리와 스커트 정장으로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긴 머리에 화려한 프린트 의상으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드러낸다.

패션 스타일로 대중에게 자신의 철학과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패션 정치'는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남성 역시 양복과 넥타이 등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수 정치인의 상징인 회색 슈트와 윈저형 넥타이 대신 감색 슈트와 딤플형 넥타이로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얻어낸 게 그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부드러운 느낌의 슈트 및 초록 타이로 친환경적 이미지를 만들고,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몸에 붙는 슈트 및 셔츠와 타이의 강렬한 색상 대비로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대선 기간엔 푸른색 타이로 보수적이고 믿음직한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전하고,취임 후엔 자부심과 자신감의 상징인 자주색 타이를 애용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3주년(25일)을 맞아 확대비서관회의를 열면서 취임식 때 맸던 비취색 넥타이를 다시 맸다는 소식이다.

겸허하고 단호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초심이 필요한 게 대통령과 청와대 공직자뿐이랴.정권 창출의 공로자로 자부해온 이들 모두 국민을 섬기고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국가로 이끌겠다는 열정과 헌신의 각오로 가득찼던 3년 전 자세로 돌아가야 훗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매일 같은 넥타이를 매서라도 분위기를 다잡아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