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정부 과천청사 지식경제부 기자실.정부가 고유가 대책을 발표한 이날은 휴일임에도 생방송 중계차를 비롯해 평소보다 많은 4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넘어선 만큼 어떤 대책이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예상했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가 단계별로 미리 준비된 매뉴얼에 따른 것 이외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실내외 조명 끄기,자율적인 승용차 요일제 실시 등 유가가 급등했을 때마다 나왔던 것들이 또다시 등장했다. 가로등 조작 매뉴얼을 보급한다는 내용도 판박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옥외 야간조명을 끄기 위한 강제조치 등 좀더 강화된 조치를 내놨다"고 설명했지만 "하던 것 또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날 발표를 접한 민간 기업의 한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뛰면서 물가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뭔가 일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급조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중점 추진했다고 하는 조명제한 대책이 대표적이다. 공공부문에서는 기념탑 분수대 교량 등 경관조명을 전면 소등해야 하지만,지방자치단체장이 필요성을 인정하는 조명은 끄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나 남산의 서울타워,부산의 광안대교 등은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계속 켜질 가능성이 높다.

지경부 관계자는 "내 생각에도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은 국가 이미지나 국익에 필요한 부분이어서 굳이 조명을 끌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예외조항이 전국의 지자체에서 남발된다면 공공부문 소등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조명 소등이 얼마나 절약 효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계산 중"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정부가 고유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기름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낮추는 등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정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눈치다.

서기열 경제부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