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노조 때문에 자괴감 든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노동조합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해 조직의 장으로서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1일 '조직개편과 정기인사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전 임직원에게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최근 한은 노조가 중앙은행 독립성 회복과 총재 독단경영 시정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 것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우리는 왜 이래야 하는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총재는 △중앙은행 독립경영 △보수 △감사원 지적사항 △지역본부 개편 △노조 전임자 수 등 현안을 다섯 가지로 나눠 노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총재는 우선 중앙은행의 독립 경영에 대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이며 과거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해서 과거와 같은 물리적 방법으로 투쟁하는 것이 시대 변화에 맞는지 숙고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 뒤 한은이 '신의 직장''철 밥통' 같은 수식어로부터 벗어나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을 만드는 일부터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보수문제에 대해선 "전문직의 경우 연봉제를 적용해 성과에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전문직에 연봉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현재 국장급 이상만 연봉제를 택하고 있지만 향후 팀장급 이상에도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복리후생비를 과다 지급했고 지난해 실제 급여 삭감 비율은 0.9%에 불과했다'는 감사원 지적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규범을 지키는 원칙 아래 후생을 증진시키는 현실적 대안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본부 개편에 대해선 조직을 축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라며 노조의 반대 입장을 일축했다.

김 총재는 타임오프(노조 전임자의 유급 근로시간 면제) 제도와 관련,노조가 요구하는 5명의 전임자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관련 법이 노조원 999명까지는 전임자를 3명,2999명까지는 5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노조원이 1500명 정도인 한은은 3.5명이 적절하다고 진단했다. 김 총재는 2999명까지 일률적으로 5명으로 할 게 아니라 노조원 규모에 따라 전임자 수를 비례적으로 정하는 것이 법 정신에 맞다고 해석했다.

김 총재는 노조 전임 활동에 대해서도 "노조원은 노조 구성원이기 이전에 한은 직원"이라며 "업무에 복귀해 생산성이 어떨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외국 중앙은행 총재는 노조 문제로 시간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왜 이렇게 소모적이야 하고 무엇을 얻고 있는가"라며 탄식했다.

김 총재는 인터넷 공간의 익명 '악플'이 우리 사회의 치부인데 한은 내부망에서도 근거 없는 비방,품격 낮은 표현 등이 있어 적지 않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이날 104명을 승진시키는 등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정년이 임박하거나 장기 근무하는 국 · 실장 16명을 현직에서 배제하는 등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차현진 신임 워싱턴주재원(49)과 성병희 금융시스템부장(47) 등 '40대' 2급 간부가 1급으로 승진했고,제주 · 경기 · 경남지역 본부장도 1959~1963년생이 배치돼 젊어졌다. 박성준 제주지역 본부장(48)은 2003년 이후 첫 40대 지역 본부장(1급)으로 발령이 났다. 2~4급 직원들이 소속 직군 내에서만 근무하도록 하는 '직군제'는 폐지됐다.

한은은 "지방대 출신과 여성 인력을 최대한 배려해 인력 운용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