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인 '대우증권 스팩'이 증시에 상장된 지 3일로 꼭 1년이 된다. 그동안 총 22개 스팩이 증시에 속속 입성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비상장 기업과의 합병에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스팩과 비상장기업 간 합병을 가로막던 각종 '세금 족쇄'가 해소돼 이르면 올 1월 중 '합병 1호 스팩'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3월이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비상장 기업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 강화를 주원인으로 지목하는 반면 금융감독원은 스팩 난립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합병 어렵다" 스팩주 하강곡선

증시에 상장된 스팩은 총 22개다. 이들 스팩의 주가는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일제히 하강곡선을 그려,72%인 16곳이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당분간 합병 사례가 나오기 힘들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A증권 스팩 담당자는 "작년 11월만 해도 5~6개 스팩이 비상장사와 합병을 추진했지만 금융감독원이 우회상장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부 무산됐다"며 "현재 합병 논의를 진행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작년 12월1일 증권발행 공시규정을 개정,상장사와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하는 비상장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자본환원율)을 종전 4~6%에서 10%로 올렸다. 할인율이 높아지면 비상장사는 상장사와 합병 시 그만큼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비상장사 가치를 '뻥튀기'해 상장사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였지만,그 불똥이 스팩으로 튀었다.

비상장사 오너 입장에선 기업가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가받아야 합병할 의향이 있는데,금감원 규제로 평가액이 낮아지게 되자 스팩과 합병보다는 기업공개(IPO)가 낫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B증권 스팩 담당자는 "요즘 합병 대상 기업 오너들을 설득하러 가면 '스팩과 합병하면 장점이 뭐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솔직히 해줄 말이 없다"고 토로했다.


◆"규제 탓" vs "난립 탓" 팽팽

증권업계는 금감원의 규제 완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C증권 관계자는 "비상장사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면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승인할 스팩 주총에서 주주들이 자연스럽게 견제할 것"이라며 금감원 규제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도 "금감원이 풀어야 할 문제"라며 "우회상장 규제를 스팩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금감원은 단호한 입장이다. 오세정 금감원 기업공시제도실장은 "모니터링을 해보니 합병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스팩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이 주원인"며 "현재로선 규제를 완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선 스팩의 주요 주주가 기관들이어서 합병 주총시 비상장기업의 밸류에이션 문제에 대해 견제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아 주주들이 제대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주식 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비상장 우량기업을 인수 · 합병(M&A)하기 위해 설립된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이 증시에 상장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스팩 투자자들은 비상장사를 M&A한 이후 스팩 주가가 상승하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