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국의 유명소매점 베스트바이는 2005년 일반 직원들을 상대로 선물용 상품권의 판매 예상치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190명의 직원들이 응답한 결과의 평균값은 실제 판매치와 99.5% 일치했다. 외부 전문가들이 5% 이상의 차이를 낸 것과 대조적이었다. 휴가철 매출 전망을 놓고 350명의 직원들이 도출한 평균치도 실제치와 0.1%의 오차밖에 나지 않았다.

#2.영화 '토이 스토리'로 유명한 미국의 픽사(PIXAR)는 영화 제작과정에 조언이 필요할 경우 8명의 내부 베테랑 감독으로 구성된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를 소집한다. 이들은 활발한 토론을 통해 영화 제작과정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토이 스토리'뿐만 아니라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등 숱한 히트작들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제작됐다.

#3. SK C&C는 지난해 10월 직원들을 위한 통합 맞춤 지식포털 '엣지(@知)'를 열고 사내 집단지성 활성화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소셜네트워크시스템을 가미한 엣지는 사내 모든 지적자산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토록 하는 포털이다. 직원들이 '마이데스크(My Desk)' 기능을 활용해 자신의 현재 업무 목표와 관심 분야를 설정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전문가 네트워크 등을 한눈에 확인해 볼 수 있다.


◆자동화→통합→스마트워킹

한때 구글이나 3M,IBM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개방형 혁신이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국의 거대 제조기업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집단지성을 활용하려는 삼성과 포스코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IT 발달과 스마트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본질적으로는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양사 모두 전자와 철강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했지만 선진국 기업들의 반격과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국 기업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방향의 선도적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집단지성은 개별적인 전문가 집단이 놓치기 쉬운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방안을 찾는 방편으로 경영학계에서 몇 년 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특히 소셜 미디어기술의 발달로 기존 CRM(고객관계관리)기법으로는 알기 어려운 고객들의 정보와 성향들을 보다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텔 아수스 P&G 쿡섹 등이 적극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흐름은 또 역사적으로 기업경영의 전략적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 대규모 시설투자와 생산성이 경쟁력의 관건이었던 1980~1990년대는 생산현장의 자동화(automation)와 품질확보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였다. 글로벌 경영이 본격화된 2000년대 들어서는 국내외를 아우르는 비즈니스 현장의 효율적인 통합(integration)과 표준화가 경쟁력을 가름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통합 전략은 부서별 · 계열사별 칸막이에 가로막혀 전체가 아닌 부문 최적화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지식의 크기가 기업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많은 비즈니스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살아있는 지식이 미래 경쟁력"

이런 경로를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화두로 떠오른 것이 '스마트 워킹(smart working)'이다. 지금은 유연 근무제 및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거나 스마트폰 등을 업무에 활용하는 선에 그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지식집약형 기업으로 가겠다는 것이 목표다.

황석주 포스코 정보기획실장은 "다양한 업종의 사업장이 전 세계에 걸쳐 24시간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회사가 일일이 직원들에게 지시하거나 과제를 할당하는 식의 시스템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내부 지식과 네트워크 활용을 극대화해 직원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일하는 방식을 확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고여 있는 지식을 저장하고 열람하는 지식경영시스템(KMS · Knowledge Management System)에서 탈피해 직원들이 살아 있는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음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보이스 메일링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삼성이 사내 인터넷망에 온라인 협업공간을 구축키로 한 것은 일종의 '사이버 태스크포스(TF)'를 상시 가동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내 18만명,해외 10만명 등 출신과 배경,성향이 다른 엄청난 규모의 인적자산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편입시킴으로써 '위키피디아'식의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삼성 그룹 관계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구글의 독스라는 문서 공유프로그램이 기업들에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미 이 같은 흐름이 글로벌 경영의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조일훈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