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 미국의 군사 개입이 임박한 가운데 '포스트 카다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카다피의 트리폴리 결사항전이 끝나거나 다른 요인으로 카다피가 축출될 경우 대체 세력이 현재로서는 없는데다 자칫 부족 간 전쟁이 본격화되는 등 혼란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제 원유시장에서 수급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리비아 변수는 그대로 남게 된다.


◆카다피 장기전 돌입 준비

반정부군과 친카다피군의 공방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1일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카다피의 5남인 카미스가 이끄는 친위부대는 이날 수도 트리폴리 주변 자위야와 미수라타 공군기지 탈환에 나섰다.

탈환전에는 대공포가 실린 차량과 탱크 등 10여대의 무장 차량이 동원됐다고 목격자는 전했다. 카다피는 자위야의 유력 부족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떠나지 않으면 전투기로 폭격할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반군들도 이에 맞서 반격에 나섰지만 친카다피군의 파상공세에 막혀 트리폴리 외곽 방어막을 뚫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와 첨단무기로 무장한 카다피군과 달리 반군은 경찰,군이탈자,무장시위대 등으로 급조돼 전투력이 떨어진다.

카다피는 또 벨라루스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등 장기전을 대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이날 휴 그리피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무기거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항공기 한 대가 지난달 중순 벨라루스의 한 군사기지를 떠나 리비아에 착륙했다"며 "군사장비를 운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30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내 가족자산 동결과 무기수입 금지,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국제사회의 압박이 구체화되자 소모적인 전면전보다 시간을 끌 수 있는 장기전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BC BBC 선데이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지난달 28일 초청,"모든 리비아 국민이 나를 사랑하고 그들은 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면서 퇴진불가를 내세우며 여론전에 나선 것도 '장기전'을 겨냥한 시간벌기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포스트 카다피' 어디로

국제사회는 그러나 반정부군의 트리폴리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어 카다피의 버티기도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이목은 이미 포스트 카다피에게 쏠리고 있다.

문제는 카다피를 이을 뚜렷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42년간의 초장기 독재 통치로 정권을 물려받을 만한 정치적 후계자나 야당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탓이다.

현재로선 벵가지에서 과도정부 리더로 추대된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눈물로 "친구인 카다피를 국제전범재판소에 세워야 한다"고 호소해 유엔 제재 결의를 이끌어낸 압둘 라흐만 샬람 유엔대사도 거론된다.

하지만 시위대 내에서는 카다피 정권 연루 인물을 모두 배제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는 게 변수다. 카다피 휘하에서 '권력'과 '오일머니'의 단물을 즐긴 만큼 결격사유라는 반감이 지배적이다.

이런 이유로 반정부 시위대의 트리폴리 진격을 초기부터 진두지휘한 타리크 사드 후세인 대령과 카다피와 대립각을 분명히 해온 압델 살람 잘루드 '마가리하' 부족장도 새로운 리더로 오르내린다.

내전이 끝나면 오히려 리비아가 트리폴리와 벵가지 등 양대 도시나 3~4개의 도시 중심으로 갈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석유자원을 둘러싼 부족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단일정부 구성이 쉽지 않은 탓이다. 더크 반데왈레 미 다트머스대 교수는 "누가 이기든 부족 간 앙금이 남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같은 장기 유혈 복수극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