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편안한 남쪽나라(安南)라고 불린다.

수도 하노이 시내 중심광장에 있는 호찌민 묘는 현지에서 영묘라고 했다. '주석.호찌민' 고인이라는 어떠한 표식도 없다. 베트남 국민들은 호 주석의 영혼이 자신들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대부분의 집은 호 주석 관련 기념품 한 점씩을 갖고 있다. 모든 화폐는 호 주석 초상 일색이다. 1969년 9월 전쟁이 한창이던 때 그는 죽었다. 시신을 화장해 재를 전국에 뿌리고 그 어떤 기념물도 만들지 않는 대신 그 돈을 전쟁비용에 보태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계자들은 그의 유체를 바로 당시 소련으로 보내 영구 보존 처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시신을 하노이로 옮겨 설치한 것이 영묘다.

하롱베이를 다녀왔다. 하노이에서 170여㎞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3~4시간 걸린다. 한 시간 정도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이고 나머지 구간은 시골길,그래도 포장길이다. 시골 풍경은 우리나라의 1950~1960년대 모습이다. 하롱베이.용이 지배한 곳.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고급 호텔이 즐비하다. 3000여개의 섬,석회동굴,기암괴석이 있다. 용의 조화인가. 아니 신의 조화로만 보인다.

베트남은 2011년 현재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원자력 발전소 등의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석유화학공장의 경우 2010년 폴리프로필렌(PP)공장을 준공했으며 호남석유화학이 시운전을 지원했다. 설 연휴여서 관공서는 휴일이고 박물관도 휴관이다. 국제공항 내 식당도 일찍 문을 닫는다. 면세점도 마찬가지다. 다같이 쉬어야 한단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1975년)한 지 35년이 지난 베트남 현재 모습의 단편이다. '도이머이(새롭게 바꾸자)' 정책을 시행한 지 25년 지났다. 그런 모습이 이렇다.

우리나라는 1968년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했다. 일부 지도자는 불도저 앞에 드러눕겠다며 반대했다. 어떤 이는 자동차도,산업발전단계도 아직 덜 된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가진 자들이 처첩과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데 쓰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고속도로를 완성했다. 경제개발 10여년이 조금 지난 1973년 울산석유화학단지가 가동되고 포항제철이 쇳물을 쏟아냈다. 1960~1970년대 새마을 운동."우리도 할 수 있다.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불어넣었다.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는 세계 5위,조선은 2위 국가다. 반도체,생활가전,정보기술은 세계를 선도한다.

그런데 박정희는 아직 독재자로만 머물러 있다. 호찌민 그는 레닌,마오쩌둥과 더불어 손꼽히는 공산당의 선봉장이 아니었던가. 그런 호찌민도 변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에서 민족지도자로 재평가하고 있단다. 공산주의의 쇠락과 무관할까. 역사란 이런 것인가.

호찌민,박정희,김일성 시대는 지났다. 이들 중 진정한 국가 리더는 누구일까?

정범식 < 호남석유화학 대표 bschong@lotteche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