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용해 더 불안합니다. "

한국 시간으로 1일 새벽.가까스로 연결된 전화기 너머로 이길범 KOTRA 리비아센터장은 "트리폴리 시내가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다"고 말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몰아내려는 반정부군과 카다피 친위대 간의 격전이 임박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트리폴리 시내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부가 한 가정당 500디나르(약 45만원)를 나눠주면서 이를 찾으려는 고객들로 은행마다 북새통을 이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동도 가라앉았다. 외환은행 트리폴리 지점의 경우 예금을 찾으러 오는 고객은 하루 3~4명으로 한산하다.

변화의 조짐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센터장은 "보수적인 기업인들이 카다피로부터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사태 초기만해도 시위대를 비판했던 현지 바이어들이 요즘엔 "너무 오랫동안 착취를 당했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리비아의 정정 불안에도 불구하고,상당수 외국 기업인들이 잔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와 KOTRA에 따르면 한국인도 370명가량 남아 있다. 리비아에 거주하던 3만명의 외국인 가운데 본국으로 돌아간 인원은 2만명 정도고,아직까지 1만여명이 안전지대에 피신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센터장은 "리비아 정부가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들이 꽤 된다"며 "끝까지 남아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리비아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들의 철수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트리폴리공항에서도 "쿠리 쿠리(코리아에 대한 리비아 현지 발음)"를 외치며 길을 터줬던 현지인들 덕분에 압사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피곤이 가득 밴 목소리로 이 센터장은 아쉬움도 토로했다. "한참 일하다가도 늑장 대응이란 얘기가 들리면 힘이 빠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트리폴리에서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벵가지까지는 거리상으로 약 1000㎞,이 넓은 리비아 전역에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는 업체들에 전화로 안부를 묻고,새벽이면 한국에 현지 상황을 보고하는 일이 대사관과 KOTRA 직원들의 일과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