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상] 버냉키 "물가 걱정 없다"…월가 "못 믿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전세계 인플레 우려 확산…FRB-월가 인플레 시각차
"상품값 상승, 美경제 영향 없다"
FRB, 인플레 낙관론 불구 물가 불안 확산…뉴욕증시 급락
"상품값 상승, 美경제 영향 없다"
FRB, 인플레 낙관론 불구 물가 불안 확산…뉴욕증시 급락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일(현지시간) "국제 유가 상승이 아직은 미국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고 진단하면서도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가계 소비 위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물가 불안 우려를 일축해오다시피 한 버냉키 의장은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고유가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불식시키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뉴욕 주가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무시하듯,국제 유가가 상승하자 급락했다.
◆FRB의 물가 진단
유가 상승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유가 등 일부 국제 상품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미국 경제에서 원자재 가격 요인이 생산 비용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물가 상승 요인은 임금이다. 하지만 실업률이 9%인 상황에서 수요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FRB의 입장이다.
그러나 휘발유 등 유류 가격이 뜀박질하는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의 말만으로 물가 우려를 불식시키긴 어렵다. 로버트 메네데즈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은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FRB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양적완화) 조치를 시행할 때 가계 물가는 계속 상승했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자 신뢰지수 조사에서도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월가 시장 참여자들은 버냉키 의장의 말보다는 경기 회복과 국제 상품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불안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FRB가 식품과 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이 안정돼 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다.
FRB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 같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지면 실제 물가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FRB가 물가를 관리목표치 내로 통제할 것이란 시장의 믿음이 깨지면 FRB는 통화정책을 펴기가 더 어려워진다. 맷 킹 벨투자자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상품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았다"며 "이날 의회 발언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적완화 정책 논란
버냉키 의장은 물가 우려에도 6월 말까지 예정된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등 양적완화 조치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양적완화 조치가 자칫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메네데즈 의원은 "양적완화 조치가 서민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인 핌코의 무하마드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NBC에 나와 "양적완화 조치를 연장하는 것은 인위적인 부양책 없이 자립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미국 경제에 실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FRB가 2차 양적완화 조치를 어떻게 끝낼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추가 양적완화 조치는 비용과 위험이 (정책)효과를 상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 점프 케이블로 차 시동을 걸었으면 케이블을 떼야 하듯,언제까지 미국 경제가 부양책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