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8시 부산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정문 앞.저축액 중 일부를 내주는 가지급금을 신청하기 위해 몰려든 고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영업시작 시간인 오전 9시에 모여든 1000여명이 순식간에 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신청자 줄이 너무 길어 정문과 후문을 한 바퀴 이상 왕복할 정도였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다음 달 29일까지 가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고객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일색이었다. "내 돈 7000만원이 이 안에 있다"는 김영숙 씨(72)는 "가지급금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심정에 어제(1일) 오후 8시부터 줄을 섰고 밤을 꼬박 새웠다"며 떨리는 손을 가슴에 대고 부볐다.

대부분 50~80대 고령층인 예금자들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많은 인파에 밀리면서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박숙자 씨(82)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자를 조금 더 받기 위해 저축은행에 넣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며 "서민들은 이래 치이고 저래 치인다"며 아픈 허리에 손을 얹었다.

가지급금 신청자의 설움은 줄을 서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당초 이날엔 가지급금 2000만원을 인출해 주게 돼 있었으나 예보 전산 시스템이 고장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14만명에 달하는 부산저축은행 고객들이 4개 지점에 몰려가 가지급금을 신청하자 전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 경우 전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예보 측에서 특별한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날 오전 6시에 왔다는 최영묵 씨(43)는 "아니,어떻게 이런 날에 전산을 고장나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돈을 안 내 주기 위해 일부러 철저히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객들은 전산이 고장나자 손등에 푸른 매직으로 대기번호를 받았다. 그들은 이 대기번호로 다시 대기표를 받아야 했다. 대기표에는 8일 오후에 오라고 써 있었다. 최씨는 "영업정지로 속이 새까맣게 탔는데 이런 식으로 또다시 골탕을 먹이네요.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은 서민들인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뒤돌아 서서 가는 최씨의 힘겨워하는 모습에 어처구니 없는 전산 고장이 오버랩됐다.

김태현 사회부 기자/부산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