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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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2 발표장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유독 그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애플을 21세기 최고의 혁신적 기업으로 등극시킨 역량과 산업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린 막강한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도 그의 건강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서울대 병원장을 지낸 박용현 두산 회장은 "췌장암 발병은 성미가 급하고 고집이 센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얘기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잡스가 보여준 행적들을 살펴보면 온화하고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것은 분명해보인다. 창업 초기 애플의 슬로건 'Think'와 그 후의 슬로건 'Think different'에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남다른 고심의 흔적이 묻어난다. 애플에 카메라모듈 등을 납품하고 있는 LG이노텍의 허영호 사장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스스로 쥐어 짰겠느냐"고 말했다.
국내를 돌아보면 1997년 삼성을 이끌었던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잡스와 비슷한 처지였다. 자동차사업이 부실화되고 다른 주력 사업들마저 경제위기라는 태풍에 흔들리고 있을 때,두 사람은 각각 폐암과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임직원들을 상대로 무려 800시간의 강연을 했으며,10시간을 넘나드는 마라톤회의를 밥먹듯이 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1995년 비서실장을 지냈던 현명관 씨는 "한 밤중에 시작한 회의가 다음 날 점심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보면 "일하는 것이 즐거워야 생산성도 올라간다"는 '펀(fun)경영'의 효용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때 '펀경영'을 주창했던 LG가 스마트폰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독한 LG'를 병행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역사적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충무공이 기개 충만한 영웅으로 알고 있지만,1592년부터 쓰여진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병약한 중년 남성의 모습 그대로다. 일기에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배에 누웠다","종일 누워서 신음했다. 원기가 허약하여 땀이 덧없이 흘렀다…","밤새도록 앓았다" 등의 표현이 부지기수다. 의사들은 당시 충무공이 만성 위염과 신부전증 등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내륙을 모조리 왜적들에게 내준 상황에서 자신은 단 한번의 패배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건강을 망치게 한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48세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는 또 어떤가. 가난에 찌든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에 단신으로 건너가 어린이와 병자들에게 헌신적인 의료 · 교육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삶 자체가 헌신과 봉사였지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을 바쁜 시간들 속에 몸에 병마가 스며들었던 것이다.
희대의 영웅이나 한 평생 인내와 희생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남 모를 스트레스는 있다. 도저히 즐거워할 수 없는 벅찬 현실 속에서는 몇 갑절로 커질지도 모른다. 비즈니스맨이나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 모두 이를 피해나갈 방법은 없다.
"잡스의 병가는 인류에게 손실"이라는 얘기에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세상 속의 성공과 건강을 맞바꾸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의 편린들 속에서 이런 반문을 해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조일훈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
최근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도 그의 건강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서울대 병원장을 지낸 박용현 두산 회장은 "췌장암 발병은 성미가 급하고 고집이 센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얘기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잡스가 보여준 행적들을 살펴보면 온화하고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것은 분명해보인다. 창업 초기 애플의 슬로건 'Think'와 그 후의 슬로건 'Think different'에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남다른 고심의 흔적이 묻어난다. 애플에 카메라모듈 등을 납품하고 있는 LG이노텍의 허영호 사장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스스로 쥐어 짰겠느냐"고 말했다.
국내를 돌아보면 1997년 삼성을 이끌었던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잡스와 비슷한 처지였다. 자동차사업이 부실화되고 다른 주력 사업들마저 경제위기라는 태풍에 흔들리고 있을 때,두 사람은 각각 폐암과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임직원들을 상대로 무려 800시간의 강연을 했으며,10시간을 넘나드는 마라톤회의를 밥먹듯이 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1995년 비서실장을 지냈던 현명관 씨는 "한 밤중에 시작한 회의가 다음 날 점심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보면 "일하는 것이 즐거워야 생산성도 올라간다"는 '펀(fun)경영'의 효용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때 '펀경영'을 주창했던 LG가 스마트폰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독한 LG'를 병행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역사적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충무공이 기개 충만한 영웅으로 알고 있지만,1592년부터 쓰여진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병약한 중년 남성의 모습 그대로다. 일기에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배에 누웠다","종일 누워서 신음했다. 원기가 허약하여 땀이 덧없이 흘렀다…","밤새도록 앓았다" 등의 표현이 부지기수다. 의사들은 당시 충무공이 만성 위염과 신부전증 등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내륙을 모조리 왜적들에게 내준 상황에서 자신은 단 한번의 패배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건강을 망치게 한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48세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는 또 어떤가. 가난에 찌든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에 단신으로 건너가 어린이와 병자들에게 헌신적인 의료 · 교육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삶 자체가 헌신과 봉사였지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을 바쁜 시간들 속에 몸에 병마가 스며들었던 것이다.
희대의 영웅이나 한 평생 인내와 희생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남 모를 스트레스는 있다. 도저히 즐거워할 수 없는 벅찬 현실 속에서는 몇 갑절로 커질지도 모른다. 비즈니스맨이나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 모두 이를 피해나갈 방법은 없다.
"잡스의 병가는 인류에게 손실"이라는 얘기에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세상 속의 성공과 건강을 맞바꾸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의 편린들 속에서 이런 반문을 해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조일훈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