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業…2세가 뛴다] (14) 싸이먼…신용 물려받은 두 딸 '시장개척 투톱' 맹활약
"여보! 결혼반지 팔면 안될까. 월급 줄 돈이 없네.정말 미안해요. "산업용 우의와 바람막이(일명 야케팬츠)를 생산, 대부분을 수출하는 싸이먼의 우병서 대표(64)는 아내에게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1994년 세모 때의 일이다. 이미 아파트는 은행담보로 잡힌 지 오래고 몇 평 안되는 땅도 다 팔아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딸의 학원도 끊었다. 이것도 모자라 결혼반지까지 팔겠다고 아내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우 대표는 "아내는 한마디 말 없이 반지를 빼줬다"고 말했다. 그는 "훗날 더 좋은 걸로 해주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큰딸 우주아 차장(34)은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아버지는 꼭 식구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밥상처럼 수저를 놓자마자 어머니 손을 잡고 반지 얘기를 꺼내셨어요.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죠.그때서야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된 이유도 알게 됐지요. " 아버지의 고생을 옆에서 보고 자란 우 차장은 "그냥 아버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입사한 게 가업을 잇게 된 동기라고 말했다. 작은딸 우지현 과장(31)은 수출을 담당하는 언니와 달리 내수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싸이먼은 산업현장에서 입는 우의와 바람막이의 국내 최대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일본과 캐나다에 수출한 900만달러를 포함해 120억원.올해는 수출 1100만달러를 포함한 150억원 달성이 목표다.

◆10년간의 적자,이겨낸 창업주

[代를 잇는 家業…2세가 뛴다] (14) 싸이먼…신용 물려받은 두 딸 '시장개척 투톱' 맹활약
우 대표는 모 대기업에 다닐 때 지인의 일본 수출 업무를 도와준 것을 계기로 싸이먼을 창업했다. 우의 사업이 되겠다 싶어 형제들에게 손을 벌려 마련한 5800만원으로 서울 도화동에 70㎡ 임대사무실을 내고 덜컥 뛰어들었다.

고생의 시작이었다. 첫해 일본 지인의 소개로 수출한 30만달러는 1997년 300만달러까지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속은 곪아 있었다. 매년 1억원 남짓 적자를 냈다. 우 대표는 "원자재값 상승과 당시 일본시장을 휩쓸고 있던 대만 제품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고,부동산을 정리하고 결혼반지를 팔아 버텼다. 이런 상황에서도 품질과 납기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그 덕분에 일본 바이어들의 주문은 차차 늘었다.

전환점은 1997년 말 일본에서 100만달러 규모의 대량주문이 들어오면서다. 우 대표는 중국 옌타이 공장에 살다시피하며 직접 품질을 관리하고 선적 일정을 지켰다. 이런 노력은 1998년 수출 300만달러 달성과 1억원 흑자로 10년 적자를 마감했다. 우 대표는 "위기 때마다 힘이 돼 준 아내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일본 산업용 우의시장서 선두권 경쟁

우 대표는 1997년 8월 일본 경시청에 군화보호용 슈즈커버 2만족을 한 달 만에 납품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 안전용품 업체인 미도리안전의 긴박한 납기요청을 받은 뒤다. 이 일로 미도리안전 측은 우 대표 부부를 후지산에 있는 회장 별장에 2박3일간 초청했다. 우 대표는 "일본 기업은 깊은 신뢰가 아니면 회장 별장으로 초청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신용이 자산"이라고 말했다.

일본 시장에 방수 · 방한용 등 기능성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대만 기업들과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수출을 총괄하는 우 차장은 "10여년 전만 해도 직원들이 일본을 찾아갔지만 이젠 매달 일본 바이어 7,8명이 찾아와 발주를 낸다"며 "이미 일본 산업용 우의시장에서 싸이먼의 브랜드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고 소개했다.

2006년부터는 캐나다 수출도 시작했다. 캐나다 우의 수입상 명단을 들고 현지시장을 누빈 덕분이다. 산업현장에서 입는 안전조끼 3만달러어치로 시작한 수출은 산업용 우의를 포함해 연간 300만달러 이상 내보내고 있다. 우 대표는 "일본 수출 실적을 내밀었더니 그 자리에서 주문을 내줬다"며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 전량 검사에 합격한 제품만 수출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큰딸, 내수는 작은딸 분담

장녀 우 차장은 호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3년간 어학을 공부하고 와 일본어에 능통하다. 수출을 전담한다. 작년 말에는 터키시장도 뚫었다.

우 차장은 "입사 초기 허드렛일부터 했지만 직원들이 말도 안붙일 정도로 텃새를 부려 힘들었다"며 "하지만 묵묵히 일했더니 얼마 뒤 직원들이 업무를 꼼꼼히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우 차장은 아버지의 '욕심'에 불만을 털어놓곤 한다. 그는 "아버지께서 어학원을 내 돈만 까먹고 있는데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을 고르고 있는 게 못마땅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중국 베이징 위옌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작은딸 우 과장은 내수를 도맡아 하고 있다. 내수 브랜드 '비오리(VIORY)'로 연간 20억원어치를 판다. 우 과장은 "2005년 입사 초기 영업할 때 '남자 직원을 보내라'는 말을 들을 때가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올해 내수판매 30억원을 돌파하는 것이 목표"라며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싶어 아버지를 설득해 중국어를 전공한 만큼 몇 년 내 중국 시장 공략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 대표는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듬직하다"며 두 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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